11월 2022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11/27/2022)


“이거 밖에 없는데 뭐 되겠어?”
그러나 아주 작은 달란트라도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 계획하며 준비하는 사람은 달라질 것으로 믿습니다.

교회의 부족한 재정, 인원, 재능으로 고민하고 있나요? 또는 미움을 회개하며 주님의 마음을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나요? 그 영역도 예수님께 드리며 기도하며 시작합시다.

‘주님. 저는 이 부분이 약합니다. 내버려 두시면 다 망칠 것 같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이 개입하셔서 주인님 되어 주세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요?’라고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며 조금씩 노력해 보세요. 우리의 좌절도, 우리의 안이함도, 우리의 무책임도 다 함께 기도해요.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을 품는 건 마위가 주는 것임을 알고 회개합시다.

이제 다 버리고, 주님께로부터 온 것만 받기로 결단합시다.

저의 있는 그대로를 받으시고 매일 새롭게 해 주시는 주님을 붙듭시다.

>>> 삶과 신앙 (11/20/2022)

사단의 거짓말에 귀를 닫아라.
지난 일 년간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먼저 기도가 잘 안 되었다. 늘 기도했으나 대부분 은혜가 없었다. 그저 원망이나 한숨, 혹은 알맹이 없이 시간만 때우는 기도를 했다. 돌아보니 삼 년쯤 걸려 서서히 기도가 줄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도가 안 되었다. 무릎을 꿇을 영적 힘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기도가 안 된다니? 뭐가 잘못된 거야?’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잘못한 것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내에게 한 잘못이었다.

‘그래… 결혼생활 십오 년 동안 나는 경제력이 없는 가장이었어.’

돌아보니 아내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제대로 된 선물을 준 기억이 없었다. 생각은 이어졌다.

‘맞아… 난 교회를 개척한 후 십 년 동안이나 교인들을 실망시켰어.’

그동안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올랐다. 물론 여러 이유로 나갔고 잘잘못은 분명했으나 지금은 그저 모든 이별이 다 내 잘못 같았다. 그러자 교회 개척 사역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마다 일일이 심판받을 일 같았다. 아니,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휴대폰을 껐다.

며칠 뒤 주일예배가 있었다. 하필 나는 목사였고 억지로 설교했다. 예배 후엔 소그룹 모임도 있었다. 억지로 모임 인도를 했다. 그때 한 여집사님이 이야기를 꺼내며 울기 시작했다.

“제가요, 지난주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직장에서 전도하며 제자 그룹을 이끌고 있는 대단한 분이었다. 그런 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지 모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잘 안 되는 모든 일이 다 제 탓 같았어요. 그런데 오늘 예배 중에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셨어요.

‘사랑하는 딸아. 너는 지금 사단의 참소를 내 음성보다 더 집중해서 듣고 있단다.’

제가 그랬어요.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가 벌 받아서 일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이었어요. 하나님은 예수님까지 보내주시며 저를 사랑으로 구원하셨고, 저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잖아요. 이렇게나 축복받은 존재인데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단의 참소에 귀 기울였어요, 저는….”

진솔한 나눔에 내 마음이 뜨거웠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 같았다(눅 24:32).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을 통해 내게 말씀하심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이 차올랐다. 공감이 회개로 이어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였다. 전혀 들을 필요가 없는 사단의 참소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꼭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잊고 있었다.

올바른 회개를 하자 영적 귀가 트였다. ‘망할’ 상상력은 ‘성공할’ 상상력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순간 몰려와 생각을 가득 채웠다.

그분은 당신을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 어떻게든 말씀을 듣게 하셔서 회개할 기회를 반복해서 주신다. 죄로 하나님과 멀어져 평안을 잃고 신음하는 모든 인생에게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신실하시다.

사단의 참소는 성경 말씀과 반대된다. 만약 당신에게 성경과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에 귀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당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목소리는 거짓 중의 거짓이다. 진실은 성경 말씀에 있다.

즉 예수님이 당신과 동행하신다. 당신은 지금 당장 성경을 펼침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얻은 존재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린다면 먼저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이 당신을 버리셨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돌이킬 길은 없다는 사단의 거짓말에 귀를 닫아라.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돌이킬 기회이며, 평안을 되찾을 은혜의 때다. 예수님 안에 평안이 있다.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하자.
 — 불안에서 평안으로, 송준기 —

>>> 삶과 신앙 (11/13/2022)

남을 비판하기 전에
제가 어느 교회에 부임했을 때, 장로님 한 분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장로님이신데 왜 이러실까?’

한참 고민하다가 그 장로님에게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생각인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다가 주님이 깨우쳐주시는 듯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그 장로님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제가 부임하고 나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보려고 노력하셔서 엄청나게 달라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 장로님의 이전 모습을 몰라서 얼마나 많이 변하셨는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그 점을 살피지 않고 그 분을 섣불리 비판했다면 관계에 큰 어려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변합니다. 생각도 달라지고 믿음도 달라집니다. 그 점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종입니다. 그 말은 내가 비판하려고 하는 그 사람도 예수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를 예수님께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친히 그 종을 붙들어주시고, 고쳐주시고, 성장시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수 있으시니, 그는 있게 될 것입니다. (롬 14:4)

어느 목사님이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다투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결혼할 때 “내 아내의 눈에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리라” 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사모님과 크게 다투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목사님 자신이 잘못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존심을 죽이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사모님이 파르르 떨며 “용서 못해요!” 하고 단칼에 거부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는데, 용서하면 다음에 또 그럴 거 아니에요?”

사모님의 말은 비수처럼 목사님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이 교회에서 기도하고 마음을 정리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하나님을 진짜 믿어?” 사모님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10년 뒤에도 나를 이런 모습으로 놔두실까? 여보, 하나님을 믿고 나를 용서해주구려.” 그때 사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사람을 보면 믿을 수 없지만 그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믿을 수 있으니 제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왜 고치실 수 없겠습니까? 그것이 믿어지면 비판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을 믿으니 종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 유기성 목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서 사고가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지금도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슬픈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에는 더 더욱 행동 전에 기도하며.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묻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는 우리 되면 좋겠습니다.

깨어진 마음. 우리는 모두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생각나게 하시는 누군가가 있다면 기도하면 어떨까요? 생명이고, 빛이시고,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만나도록요. 그것이 진정한 치유니까요.
— 김유림 작가 —

>>> 삶과 신앙 (11/6/2022)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본다.
요한복음 10:40-42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1.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도 있었다. 본문을 보니,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셨다.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마을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 대한 신뢰가 컸다. 그 삶이 진실했기 때문이다.
  1. 본문에 따르면, 요한은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다. 기사와 이적과 표적이 세례 요한에게는 없었다.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았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표적을 보고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보고 세례 요한을 좇았다. 세례 요한은 죽었지만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 대한 신뢰가 참 높았다.

  1. 그런 세례 요한이 있던 마을에 예수님이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이 말씀 뒤로 ‘그리하여’란 접속사로 다음 문장과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1. ‘그리하여’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참이라 말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하나밖에 없다.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은 잘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메시아라 말했다면, 세례 요한의 말은 참이라며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1. 나는 이 말씀 읽을 때 소름이 끼쳤다. 교인들도 다 사람이니까 불완전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전도해서 교회를 다니다가 실망하고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가나안 성도(거꾸로 하면 안나가 성도)들이 꽤 많지 않나. 예수님은 믿는데, 하나님은 믿는데, 교회는 싫단다. 사람들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나님 보고 믿지, 사람 보고 믿냐”라는 이야기다. 맞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도하는 대상이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도 보지 못한 하나님만 보고 하나님을 믿겠는가.

선교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구조이다. “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저 사람, 저 목사 사는 거 보니까 하나님이 계신 건 틀림없어.” 그래서 사실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1.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믿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닌가. 세례 요한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아닌가.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참 많다.
  1. 요즘 한국의 기독교가 참 위험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취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보기엔 정상적이 아니다. 상식적이지도 않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안 하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교회 문을 막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려고 했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같아 보인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판단하실 일이지만 그와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참 비참하고 후회스러울 것이다.

우리의 삶이 많은 사람을,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주께로, 주의 몸 된 교회로 이끄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까? 아마도 아주 길지는 않을 것이다. 꼭 암에 걸려서가 아니라 이제 살아온 날이 훨씬 길고 남은 날은 짧다는 건 정해져 있는 이치다. 짧으니까,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난 70년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몇 년이 나한텐 훨씬 더 귀한 삶이다.

  1. 나의 남은 날을 계수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다. 잘 살아야지. 헛된 생각 버리고 살아야지. 욕심 때문에 바보짓 하지 말아야지. 죄짓지 말아야지. 그렇게 쉬운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번 잘살아 봐야지.

예쁘게 아름답게 살아서 사람들이 ‘아, 내가 예수님은 보지 못했지만 김동호 목사 말은 맞아. 김동호 목사가 하나님에 대해 한 말이 맞아.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이 맞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그래서 내가 전하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만나고, 교회에 실망해서 교회를 떠났던 사람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간다면 그 시간이 혹 짧다고 해도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 되겠는가.

10. 세례 요한. 정말 부럽다. 세례 요한이 한 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많은 이 세상에 도리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그런 삶을 사는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 예수님 식대로 살기, 김동호 —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헌신과 섬김이 모범이 되는,
목사, 장로, 집사라는 직분에 합당한,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기도와 말씀이 생활화 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신앙’이 좋은 사람
아무도 보지 않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진정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서야하는 이 때,

그동안 쌓여진
나의 거품을 거두고
깊숙하게 자리한
진짜 ‘신앙’을 꺼내어 봅니다.
— 이정한 작가 / 히스토리 카툰 —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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