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2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5/29/202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수 있는 능력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영혼(soul)을 지닌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당연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영적인 눈이라 부릅니다.
육체의 눈이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영적인 눈은 항상 그분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저자는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본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그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기다리며, 구하고, 찾는 것일까요? 바로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함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마쳐야 온전한 기도가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독특한 문화이자 영적인 무기 중 하나로 통성기도가 있습니다. 통성기도는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정서가 만들어낸 것으로, 마치 광야의 울부짖음 같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울부짖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광야 속에서 한을 토하듯 울부짖는 것에 익숙합니다. ‘제발 억울하고 답답한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달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울부짖음이 마친 후에는 우리도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가장 고요하며, 가장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곳이 광야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광야에서 듣기를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바로 ‘잠잠히’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요동치는 우리 내면의 음성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음성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우리의 온몸에 힘을 뺄 때, 바로 이때가 우리의 영혼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때입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광야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이런 광야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골방입니다. 매일 머무는 곳, 매일 내가 지나는 곳,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곳, 그곳에 나의 골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광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화장실이든, 차 안이든, 사무실 책상이든, 버스 안이든, 지하철 안이든, 혹은 출근 전 들리는 새벽기도회이든, 우리는 어느 한 곳을 나만의 광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곳에 앉을 때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30초 만이라도, 1분, 3분, 5분 만이라도 우리의 온몸과 영혼이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시간입니까?
이렇게 날마다 주님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훈련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려는 노력이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분명하고 깊이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이진황, 하나님의 음성 듣기
>>> 삶과 신앙 (5/22/2022)
눈물을 통해 일하신다
남편은 말씀 전하러 부산에 갔고, 나 혼자 양산에서 1부 주일예배를 드리고 축도 끝나고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설교하러 간 교회는 개척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성도가 몇 명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하나님, 오늘 남편이 말씀을 전할 때 담임목사님이 제일 은혜받게 해주세요. 남편의 설교가 오늘 목사님께 제일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메시지가 되게 해주세요. 그 교회에 큰 은혜를 부어주세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간절히 중보했다. 오후에 남편에게 문자로 말씀 잘 전하셨는지 안부를 물으니 남편이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답을 했다.
“여보, 그럴 줄 알았어요. 내가 오늘 예배 때 중보하는데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지난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행하시기 전에 나에게 항상 눈물을 주셨다. 눈물을 쌓게 하셨고, 눈물로 준비하게 하셨다. 아이를 한 명씩 품을 때마다 그때에도 눈물을 많이 주셨고 눈물로 낳게 하셨다.
《바보 엄마》 책이 출판되고 나서 여진구 대표님과 통화를 했을 때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투고하신 분들의 명단을 놓고 기도를 하는데, 선교사님의 이름 차례가 되니 하나님께서 ‘이 딸을 통해 내가 영광을 받고 싶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출판 확정이 난 거랍니다.”
순간 나의 눈물의 기도를 다 보고 계셨고 다 듣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일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니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눈물을 사용하셨다. 나의 눈물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다. 《바보 엄마》를 읽은 분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눈물로 읽었어요”, “눈물이 글에 박혀있는 것 같았어요”였다. 울고 또 울었던 나를 통해 엄마들에게도 동일하게 눈물을 부어주신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직접 강의를 가서든 줌(zoom. 화상 회의 및 채팅 앱)을 통해서든, 나를 세우신 곳마다 엄마들의 눈물이 터지고 주님을 향한 눈물이 회복되는 것을 보게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눈물이 많은데 이것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은사가 될 수 있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은혜였다.
하나님은 나에게 순종과 헌신, 결단을 요구하시기 전에 눈물을 주시면서, 그 눈물의 은혜가 너무도 강력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어주시는 감동대로 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셨다.
그런데 참 부끄럽게도 그렇게 주님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결단하는 것과 실제로 삶을 살아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같을 때가 많았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해서 ‘주님, 제가 할게요!’라고 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때로는 너무 힘들고, 눈물로 기도했던 대로 살지 못하는 내 모습에 나에겐 또 눈물이 필요했다. 눈물로 감동을 주셨지만, 그 감동을 살아내기 위해서도 또 눈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늘 받아주셔서 참 감사하다. 주님 앞에서 못할 것이 없는 양 마음이 뜨거워져서 눈물로 헌신을 결단하는 나도 기뻐하셨고, 실제 삶에서는 그 감동대로 살아내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게 살아낼 수 있기를 위해서 또 눈물로 기도하는 나도 기뻐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나를 그 눈물을 통해서 ‘살아내는 자’로 조금씩 바꾸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
혹시 당신의 삶에도 눈물이 쌓이는 일들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통해서 당신에게 선하신 일을 시작하실 것을 기대하기 바란다. 그 눈물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 속에 그분의 마음을 더욱 부으시고, 그 눈물을 통해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신다. 아무도 몰라줘도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주목하고 계시기에 눈물은 능력이 된다.
– 권미나, 『울보 엄마』
>>> 삶과 신앙 (5/15/2022)
불평과 감사가 거하는 곳, 마음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것보다 전염성이 강한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하나는 사람을 살려. 이 둘 중에 넌 어떤 것을 선택할래?”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사람을 살리는 후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상황과 마주할 때 전자를 선택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그건 바로 불평과 감사다.
불평은 나의 심령도 죽고, 다른 사람도 함께 죽게 만든다. 반대로 감사는 나도 살고 타인도 살릴 뿐 아니라 기쁨과 행복을 전염시킨다. 어떤 일이든 아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선택 앞에서 전염성이 강한 이 두 가지를 꼭 상기시킨다. 아이들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불평과 감사의 기로에서 감사를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 4:23
불평과 감사가 거하는 곳은 마음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절대 공존할 수는 없다. 마음을 지켜내지 않으면 절묘한 타이밍의 선택에 따라 마음을 채우는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감사가 마음에 채워지길 노력해야 한다.
불평을 이기는 힘은 감사와 찬양밖에 없다. 습관적으로 매 순간 입술에 찬양을 채우고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자. 주어지고 있는 것에만 감사하는 것을 넘어 그리 아니할지라도 감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감사인 것을 온 가족이 배워나가야 한다.
하박국의 기도처럼 모든 것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감사하는 가정이 되자. 소소한 감사, 일상의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가 자녀들과 가족의 입술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시 100:4
– 백은실, 『엄마표 신앙교육』
>>> 삶과 신앙 (5/8/2022)
이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때는 하늘이 땅에 임하고 땅이 하늘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는 어릴 때답고, 장성한 때는 장성한 때답게 사명과 본분을 다하는 것이 때에 맞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자연법칙만이 아니라 역사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때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때야말로 역사의 본질이자 핵심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의 때’,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능력으로 이루신 ‘구원의 때’에 약속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대속은 완성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령이 강림하셔서 우리를 진정으로 회복해주시는 ‘회복의 때’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라고 한 바로 그때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너무나 확실하게 기다리는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날, 놀랍게도 모두 한 마음 한 소망으로, 오직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며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하나님은 약속하신 새 언약을 이루실 준비가 되셨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약속하신 것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오순절 성령 강림의 때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간 가운데 오심으로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 즉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바로 성령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 이하에 이루어진 역사로, 지금이 바로 오직 믿음이면 충분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때가 되었다고 선포해주십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제 낙심할 일은 우리에게서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 오직 믿음으로 들어왔다면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운명은 이제 바뀌었습니다. 나의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반드시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가 오늘도, 그리고 날마다 생생한 복음을 생생한 주님으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멈춰 선 것 같은 바로 이때, 다 실패한 것 같고, 혼자인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이때, 이때가 하나님의 때입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때를 아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때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성취해 가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도 생생한 주님으로 그분과 동행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 김용의, 『나에게 생생한 복음』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가 없어서 낙심될 때
아무리 기도하고, 섬겨도
상황이 나빠져서 낙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기도가…소용이 있는 것일까요? 하물며 저도 잘 안 바뀌고요.’
그런데, 방황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해야 하잖아요.
예전에는 낙담하면 주님을 떠나 낙담하다가, 마귀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크게 배웠거든요.
그래서 방황해도 주님 앞에서 했습니다.
말씀과 기도, 찬양을 드리며 설교를 찾아보며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기다렸지요. 주님은 주님께 계속 나아오는 사람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니까요.
그러다가 제 마음을 회복시키는 말씀을 만났습니다.
성령님께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그릇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래서 금세 바닥을 드러냅니다.
낙심 말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되돌아보십시오.
지치고 연약한 사역자여
한계가 없으신 성령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호와는 전능하시다는 사실에 기뻐하십시오.
– 찰스 스펄전
>>> 삶과 신앙 (5/1/2022)
당신이 지금 묶여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아무 소용없다.
욕심이 생기는 것을 피하라.
교회에서 예배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하는데, 봉사하는 것이나 사역이 너무 많아서 지친다면 정리하는 것이 좋다. 많은 사역보다 예배에 집중하고 안식을 누리라.
취미활동도 너무 지나치면 노동이 된다. 취미나 놀이가 집착이 되지 않도록 절제하라. 쉬려고 시작했던 취미에 지배당하지 말라. 가끔은 여행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면서 찬양하며 자연에 담긴 하나님의 감동을 느껴보자.
소그룹 구성원과 함께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누리자. 함께 웃고 함께 울자. 그런 관계와 나눔이 안식과 쉼으로 이어진다.
하나님 안에서 노는 시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놀고 쉬는 시간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놀고 쉬는 시간에 절대로 죄책감을 갖지 말라.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
자연을 보고 기뻐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서로 삶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기억난다.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작은 것 하나하나 모두 만끽하며 누리라.
날씨가 좋으면 화창한 날씨를 누리고, 비가 오면 고즈넉한 운치를 누리고, 바람이 불면 그 시원함을 누리자.
쉬는 시간에 기도하고 말씀을 봐야 하지 않나 걱정하지 마라. 주일은 하나님이 분명하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주님과의 축제의 날이란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임을 기억한다면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안식할 수 있다. 쉼과 회복을 얻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균형이 중요하다.
성경은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게으르면 안 된다고도 하신다. 성경 한 구절만 붙잡으면 어려워진다. 쉬고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균형이 중요하다.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과의 시간이 더 깊어질수록 깊은 평안과 쉼이 이루어질 것이다.
– 홍민기, 『계속 이대로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