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3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4월 2일 2023)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시련 속에서 견디며 기도하는 다음세대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짜 우정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요. 어려울 때도, 예수님 편에 서라.”고 하시면서요.
예수님을 통해 위로 받고, 기적과 치유가 일어날 때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과 비웃음이 쏟아질 때도 예수님 편에 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했던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감독.
당시 로마에는 크리스천들을 향한 엄청난 박해가 계속됩니다. 상황은 더 나빠져서, 로마 총독은 시저 황제를 신격화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황제 숭배를 강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지키며 황제에게 제사하지 않고, 황제를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 기로 결정합니다.
그를 불 태우기 전 “한번만 황제에게 주님 (주인님)이라고 하고 제사에 참여하면 살려주겠다.”라고 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80년 넘게 예수님은 한번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는데 제가 어찌 예수님을 배신하겠습니까?” 그렇게 그는 끝까지 불에 태워지면서도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 잠시 같이 기도할까요?
좋으신 주님. 내 평생. 주님은 신실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진정한 친구의 자리에 서게 하소서.
때론 흔들립니다.
‘주님 편에 섰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 꼴이 이게 뭐야.’ 하는 마귀의 생각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악인의 장막에서 천 일을 사는 것보다 주님의 문지기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사는 것이 더 영광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하소서.
흔들리고 지친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동여매소서. 그래서 끝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종려주일을 맞으며…
2023년 4월 2일 주일은 부활절을 한 주간 앞둔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이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돼 있는 날이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38, 요12:12-19).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의와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군중들은 이렇듯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메시아 또는 선지자, 왕을 맞아들이는 예식을 거행했지만, 5일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으라고 소리쳤다.
이에 다음날인 3일부터 부활절 전날인 7일까지는 ‘고난주간 (苦難週間, passion week)’이라 불린다.
‘수난주간(受難週間)’으로도 불리는 고난주간은 잘 알려져 있듯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로, 종려 주일 다음 날부터 부활 직전까지의 1주간을 말한다.
예로부터 성도들은 고난주간이 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냈다. 특히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목요일, ‘세족 목요일(洗足木曜日)’과 주님이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은 더욱 경건하게 보낸다. 오락을 금하고 금식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교파에 따라 다양하게 지켜지고 있으며, 특별 새벽기도회나 저녁모임 등을 열어 경건하게 보내고자 노력한다. 성금요일 저녁에는 많은 교회들이 모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기도 한다.
>>> 삶과 신앙 (4월 23일 2023)
자기 마음대로 사는 어떤 크리스천
아무것도 한 번은 설교하면서 어떤 글을 인용하며 “Oh My God” 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미국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목사님, ‘Oh My God’은 욕입니다.”
난감할 때, 당황스러울 때 쓰는 표현으로 생각해서 설교에 인용한 것인데, 미국 사회에서는 그 표현이 욕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이 된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욕처럼 사용된다니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기를 갈망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기도의 순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신 후 제일 먼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러니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기 기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대단히
분노하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 특별히 절박한 이유는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 말할 수 없이 모욕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 얼마나 아픔이 되는지를 모릅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때로는 성경을 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모욕이 되는지 모르고 말입니다.우리가 말씀에 은혜받고 하나님을 더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인들 사이에 서로 분란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통탄하시겠습니까?
— 유기성,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자』 —
>>> 삶과 신앙 (4월 30일 2023)
하나님, 유독 힘든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거리를 걸으며 하나님께 말씀 드렸다.
“하나님, 유독 힘든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마음 한 켠 의지했던 동역자 부부가 우리 교회를 떠났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사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음의 기쁨이 다 사라져버린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걷게 된 저녁 산책길. 주님과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사역에 대한 의욕 저하와 왠지 모를 허무감에 축 처진 제 마음을 주 님께 그대로 고하고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앞에 여전히 작은 아이입니다.
주님이 돌봐 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못 하는 작은 아이 말입니다.”
그저 이런 고백을 하며, 주님께서도 저와 함께 걷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셨기 때문입니 다.
‘그래, 안다. 걱정 마라. 그저 너는 나와 함께 이렇게 걸으면 된단다.’
말씀하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행복했습니다. 제 인생의 목적도 다시금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오셨다는 것과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기쁨이 제 인생 에 허락되었다는 것, 저는 이제 그 두 가지를 붙잡고 살아가리라 다 짐했습니다.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친구와 교제할 때만큼 좋은 때가 어디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돼 주신다.
나는 그래서 혼자 운전하거나 산책할 때도 내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 으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풀어가곤 한다. 그러면 나를 엄습하 던 어두운 그림자가 어느새 걷히고 하나님의 온화한 빛이 나를 에워 싸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야말로 어둠의 진영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능력의 기도요 영적인 기도임을 때마다 알게 되는 것이다.
— 한근 영, <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
사실, 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식었어요…
예전에는 버스 기다리면서도 계속 찬양하고 밤 늦게까지 혼자서 예배하 면 주님이 가까이 오셔서 너무 행복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늘 주님과 함께 했는데…
어느덧 마음이 식어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바뀌지 않는 상황들에 실망해서, 기도가 줄어들고, 세 상의 여러 것들에 정신이 팔려 주님과의 교제가 자꾸 미뤄지기 시작했 지요.
그런데 자꾸 예전에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제 모습이 생각나는 거예 요. 누군가 말해주었어요. ‘그거 예수님이 그 때를 그리워하신다는 거야.”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생기지 않는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렇 게 나의 상태를 진실하게 주님께 고백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