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4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7월 28 일 2024)

감사와 충성의 이유

>>> 삶과 신앙 (7월 21 일 2024)

“당신은 진짜입니까?”
이 세상에는 의외로 가짜가 많습니다.

명품도 짝퉁이라고 하는 모조품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가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교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대략 1만 개의 교회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그중에 진짜 성도가 많을지 가짜 성도가 많을지 생각해보면, 가짜 성도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다고 합니다. 주님은 진짜와 가짜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여기서 “주여 주여” 하고 주님을 찾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뜻도 모르면서 “주여 주여” 합니다. 기도할 때, 찬양할 때, 힘든 일을 만나면 한숨을 쉬면서 “주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몸에 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인과 종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강한 말입니다.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것이 종입니다. 종은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생각합니까? 입으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지만 행동하는 것을 보면 결코 주인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주인이고, 주인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말한다고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너희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만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십분의 일은 내 것이니 내게 돌려라” 우리에게 명령하신 말씀에는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 이런 말씀은 진짜 어렵고, 어려운 것은 지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그 정도로 많이 참고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의미라고 여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면 된다고 마음대로 그 수준을 낮춰버립니다. 그러나 주인님이신 예수님은 말씀 그대로 진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로만 주님이라고 떠들지 말고 원수도 사랑하고,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받으려고 기도 제목 주르륵 읊고 유창하게 말하는 것에 초점을 두면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
그분이 평생토록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인도하고 지켜주신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출입을 지켜주신다.

>>> 삶과 신앙 (7월 14일 2024)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길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식 되게 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누구든 들어서 사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로 나 같은 죄인이 선택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내가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쓰셔서 일을 행하실 것이다. 대신, 나는 순종하는 종에게 예비된 엄청난 축복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영광으로 생각하라.

그렇다. 축복은 절대 우리 자신이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도 열방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 항상 우리를 통해 축복받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축복을 받기만 해 놓고 흘려보내기를 거부한다면, 축복은 저주가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을 때는 하나님을 위해 과감히 헌신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 내가 대학생 이었을 당시에는 대학이나 청년 집회 때 헌신하라고 하면 겁 없이 일어나는 친구들이 많았다.

‘주여, 제가 주를 위해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선교사로 가겠습니다.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학생들이 3,40대 직장인이 되고, 결혼하여 가정이 생기고,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면 헌신하라고 할 때 주저한다. 가진 게 많아지고 부양할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슬그머니 헌신자의 대열에서 빠져 방관자의 대열로 물러난다. 잃을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가진 것을 보존하고 싶고, 지금의 작은 행복에 안주하고 싶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복과 안전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를 꺼린다면, 눈에 보이는 성공은 진정한 영적 성공으로 가는 길을 막는 가장 무거운 걸림돌이 될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고자 하시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우리에게 남에게 주지 않은 축복을 부어 주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축복에 취해서 축복을 주신 거룩한 목적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가 있는 자리가 그저 우연히 있게 된 자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잘나서 순전히 내 노력으로 된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안 된다.

왜 우리가 이만한 돈을 벌게 됐는가. 왜 우리는 남들보다 더한 인기, 더한 학벌, 더 좋은 자리를 갖게 됐는가.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일까?

결코 그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고 주신 축복이다. 그 위치가 높고 귀하든지, 낮고 천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축복을 주실 때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법이다. 축복을 받았으면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하라.
 — 한홍, 『거룩한 돌파구』 –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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