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8 삶과 믿음 모음
>>> 교회와 사역
인터넷 설교 앞에 선 나
마가복음 4장 1-20절을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런데 오늘날 인터넷이 지배적 커뮤니케이션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교회의 예배를 통해 듣는 설교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설교는 흔히 접하는 인생 회고나 실생활의 유익한 강의가 아니다. 목사의 설교는 간절한 선지자의 외침처럼 성도들의 영성을 깨우며, 때로는 죄를 책망하며, 삶 속에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성장하여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전하고도 철저한 교리를 가르치며 구원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북돋아야 함도 물론일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설교를 강의나 세미나처럼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 정도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설교는 내 자신을 낮추며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한번의 마우스 클릭이나 핸드폰 터치로 언제 어디서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설교나 성경 강의를 쫓아다니는 데 멈추는 이는 참 예배와 설교의 의미를 놓친다.
또한, SNS 나 Youtube 등을 통한 교회와 사역의 유용한 정보들이 잘못 적용될 때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많은 경우 그 정보와 경험들은 특정한 장소(교회)와 시간에서 나온 것인데 그 시.공간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받아 들여 자신이 속한 교회와 그 교회의 사역에 무리하게 적용하면 교회의 질서와 화합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인터넷 설교에 의존적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속한 교회의 목사의 설교를 등한시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귀한 자료와 정보를 올바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지혜와 더불어 나와 함께 사역하며 섬기는 목사의 설교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터넷 사이버 공간의 유익한 성경공부, 설교, 강좌, 찬양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무릎 꿇는 예배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삶 속에서 신앙을 북돋우는 보조 수단으로는 훌륭하지만 지나친 의존은 조심해야 한다. 자칫 교회 안의 예배와 기도와 교제를 소홀히 하거나 목사의 권면 보다 인터넷 상의 상담에 의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내가 섬기는 교회는 차선으로 밀려날 수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보면, 성도가 자신 만의 (사이버 공간) 교회를 내적으로 만들어 낼 때 몸 담고 있는 교회를 향한 헌신과 교회 질서에 대한 순종이 사그라지며 새로운 형태의 ‘교회 분열’을 초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섬김의 교회 ‘식구’들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일하는 데 더 큰 신앙의 가치를 두었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에서 주어지는 설교 말씀을 겸손히 받으며, 목회자가 이끄는 성례를 귀하게 참여하며, 신앙 위에 새워진 한 가족 공동체로 서로를 용납하고, 때론 교회의 권위로 주어지는 권면도 눈물로, 감사로 참아 내면 좋겠다.
교회와 기독교에 관련 된 인터넷의 무수한 자료와 정보를 매일 접하고, 듣고, 메모하는 나에게도 그것들은 단지 섬김의 교회사역를 위한 재료일 뿐이다. 내가 ‘선 곳에서’ 내가 사역하기에 ‘가상의 공간’에서 얻는 설교와 찬양과 강의, 모두가 내 신앙의 비타민일 뿐이다. 나는 진리의 선 상에 선 목회자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을 때 성도는 행복하다고 믿는다. 바른 교회, 바른 목회, 바른 사역을 추구한다면 힘들어도, 때론 머리 아픈 일이 생겨도 늘 샘 솟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서로 ‘부딪히며’ 사역하고, ‘얼싸안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마주 앉아’ 말씀을 듣고 되새기는 ‘현장의 교회’인 섬김의 교회가 ‘생명력 있는 교회’로서 전진하기를 꿈꾼다. 교회 일을 하며 애쓸수록 그 사역 나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고 새로운 안식의 출발이기를 늘 꿈꾼다.
묵상 에세이
‘감사’는 성경적 원칙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감사를 표현해왔다. 또한 ‘감사하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것을 쉽게 잊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다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과 감사를 상기시키는 성경구절 10가지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시편 107편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에베소서 5장 20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골로새서 3장 16-17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6-17)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골로새서 4장 2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시편 95편 2-3절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시95:2-3)
시편 100편 4절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고린도전서 9장 11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전9:11)
시편 9편 1절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시9:1)
>>> 교회와 사역
감사가 위대한 이유: 추수감사절
많은 이가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인 수장절인 줄 알고 있지만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그보다는 신안인이 극단적인 삶에서 감격하여 드린 감사예배에서 유래한다. 즉,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지킨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주의를 지향했던 청교도들은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하여 겨울을 맞아 추위와 식량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 해 봄을 맞기도 전에 절반가량이 죽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왐파노악 (Wampanoag)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곡식을 파종하여 3년만에 대풍작을 거두게 되었다.
당시에 살았던 청교도 에드워드 윈슬로우(Edward Winslow)가 남긴 기록을 살펴보면, 이때 왐파노악 부족의 왕 마사소이트(King Massasoit)가 90여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3일 동안 축제에 참여하였으며, 이들 부족은 사슴 다섯 마리를 잡아 와서 연회 음식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이 되었고 모두를 초청하여 선물하고 감사하고 함께 줄기는 축제로 지내고 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의이유와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서 예배보다 감사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황소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감사함으로 찬양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배 자체를 감사로 드려야하기 함을 뜻한다
둘째, 우리는 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감사를 점검해야 한다. 정말 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셋째, 추수감사절은 전천후 감사의 집약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믿으면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다. 사자굴의 다니엘과 감옥 속의 바울처럼 상황 믿음으로 해석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넷째, 과연 우리의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실천적 삶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셨을까?’
묵상 에세이
견디기 힘든 세찬 바람과 뜨거운 태양의 타는듯한 갈증을 견디어 낸 나무가 자신의 열매를 묵묵히 다른 이를 위해 다 내어준것처럼 우리도 그리하기를 원합니다
길러주신 부모께 효를 다하고, 맡겨 주신 자녀를 양육하고, 허락하신 목자와 공동체를 섬기니 때가 되어 그 열매를 수확하게 하시는 주님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계절 도대체 어떻게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되묻습니다. 그러다 성령님의 지혜가 깨우치시니 내 속의 교만이 보입니다.
이리 저리 불평을 퍼뜨리는 물결 속에 내가 헤매이는 게 보입니다.
세상에 야합한 나의 시각과 끊임 없는 욕심이 이생의 자랑과 만났던 나였기에 결코 사랑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고 좀더 오래 참고 절제하도록 해달라고.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이 지금 내 안에서 가능케 해달라고 주님께 간청합니다. 우리들의 어린 자녀가 이웃의 모습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때까지.
몸만 성장해 버리고 지혜없이 미련한 우리 어른들도 자신을 돌아보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자신이 서 있음을 알게 하소서.
그런 깨달음이 있기까지 오래 기다려주시는 주님께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난 죽었습니다. 더 죽으려합니다. 새로 태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새벽에 내 의식이 고백합니다 — “하나님아버지, 온 맘으로 사랑합니다.”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할지니라.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이 말씀에 자격없는 자가 사랑받고 있는 은혜를 깨달으니, 저는 평생 여호와를 노래하렵니다.
사는 동안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그리고 또 기도하렵니다.
내 입술에 맺혀지는 기도가 하나님께 합한 간구가 되기를 소원하며
“주께서는 온맘으로 주의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푸시나이다” 라는 솔로몬의 고백을 내 것으로 삼습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품에 안기게 된 나, 온 맘을 다해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합니다.
>>> 교회와 사역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두달 뒤면 2019년이다. 내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연말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 내년을 대비할 수 있다.
1.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직하게 평가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하고 키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특권을 받게 하시려고 값을 지불하셨다. 이제 스스로에게 묻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한 일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일 년을 돌아보고 정직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성령과의 교제 속에서 자랐습니까? 죄와 자아가 더 많이 자라났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에게 더 많이 살아났습니까?
2. 고백되지 않은 죄를 회개하라.
고백하지 않은 죄를 다음 해로 옮기지 말라. 지난 1년을 돌아보고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 고백하라. (정말로) 죄가 없다면, 죄를 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죄를 회개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3. 기도 응답을 체크하라.
2018년에 주님께 기도한 것들에 대한 신앙 목록을 만들어 보자 당신의 명단을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살펴 보자.기도에 응답받은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감사하고, 당신의 삶에서 그분의 뜻이 더 많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라. 아직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믿으라.
4. 모든 범죄를 용서하라.
내년에 용서하지 말라. 2018년에 여러분에게 일어났던 모든 것을 되돌아 보고 어떤 사람이 상처를 입혔거나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것을 하나님과 자신에게 인정하고, 그를 용서하라. 가해자의 사과 또는 미안한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용서할 수 있다.
5. 과거를 버려라.
내년에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준비하신 것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과거를 놓아줘야 한다.
금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선과 악을 포함하여 버리라. 회개하고, 용서하고, 풀어주고, 놓아주라. 당신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러 있다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가라.
묵상 에세이
‘의도적인 감사’
감사는 배워야 할 특성이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연습함으로써 습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도적인 감사는 내가 성장시키고자 노력한 분야이다. 당신이 작은 일들에 대해서 고맙게 여기는 것을 배울 때, 당신이 가진 전체적인 조망은 완전히 바뀐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나 세상이 당신에게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조차 발견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도 감사함으로 시작하라. 하나님께서 감사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을 살펴 보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한다.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만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상황에서 감사를 표현할 것을 우리에게 명한다. 최악의 시기에도 우리 주변의 좋은 것을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중 일부에게는 이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황에서 선을 찾는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성서는 관용에 대해서도 말하며 그것이 감사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고후 9장 11절은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더 감사하게 된다. 음식, 선물 등의 물질적인 것이나 자원 봉사 또는 단순히 친구를 도우면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든 우리의 하루 하루의 태도가 바뀐다!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무언가를 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분이 당신의 삶에서 일하기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작은 축복조차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디모데전서 4장 4~5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진리를 제시한다. 모든 것이 좋으며 거부 할 것이 없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장한 채로 축복을 전한다. 이성친구와 헤어졌거나 시험에 실패했을 때에도 당신이 감사 할 수 있는 숨겨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이성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진정한 삶의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고, 시험에 실패했더라도 더 열정을 가질 만한 전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감사하라. 좌절감, 실망감, 예상치 못했던 뒤틀림에 감사하라. 그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 크리스챤투데이 –
>>> 묵상에세이
“너는 무엇으로 기뻐할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기뻐하지 말라
내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갈 때만 해도 나의 꿈은 중국 지하 교회 성도들과 같이 핍박받는 것이었다. 지하 교회에서 같이 찬양하다가 공안들에게 쫓겨서 아파트 2층에서 뛰어내리고 도망다니면서 수갑을 풀고, 투옥되고 핍박당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렇게 상상하고 중국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이 기차로 이동하는 데 쓰였다. 아니면 딱 한 사람 붙들고 교제하거나 광야에 혼자 앉아 있어야만 했다. 내 친구 중에 경찰이 많다. 그들이 경찰을 지망할 때는 범인과의 총격전,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것을 생각했는데 막상 경찰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서류 작성이라고 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이 시대에 선교사로서 꼭 배워야 하는 것은 ‘사역의 열매가 없어도 계속 사역을 할 수 있는가’이다. 땅 끝으로 가면 갈수록 열매를 보는 게 힘들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역이 아니라 지하로 들어가는 사역이 많아진다. 그래서 생각보다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열매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다시 생각해보거라. 나는 이제 혼자 남겨질 거야. 내가 어떻게 감당하는지 잘 봐두어라. 3년 동안 내 인생을 투자한 모든 열매가 하루아침에 날아갔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시니 내가 감당할 것이다. 너희도 나를 보고 배우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 메시지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성령님이 오셔서 기억나게 하시니까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가서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를 쫓고 병을 고치며 전도를 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한다. ‘예수님 대단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니까 마귀가 나가고,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나더라고요.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그것으로 기뻐하지 마.’ 위의 맥락에서 풀이하면 이런 뜻이다.‘내일 전도할 때 마귀가 안 나가면 너는 무엇으로 기뻐할래? 내일 사람이 안 모이고, 예배당을 뺏기며, 사역지가 없어지면 무엇으로 기뻐할래? 내일 성대 수술해서 더는 찬양을 부르지 못하게 되면 무엇으로 기뻐할래?
현상적인 이유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네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버지께서 너를 홀로 두시지 않고 함께하신다는 사실로 기뻐해라.’ 이런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면 땅 끝까지 갈 수 있다. 그것만 준비되면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온전히 땅 끝 복음을 완성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이기는 자』다니엘 김
교회와 사역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더욱 성숙하길 원한다면, 헌신의 영역에서 자라야한다. 많은 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따분한 반복적인 의무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이 놀라운 특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말씀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당신의 헌신이 건강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5가지 신호’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성경을 의무감으로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해야할 일의 목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며 우리 발의 빛이요 날카로운 검이다. 하나님의 말슴을 읽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약속의 신실함을 일깨워주신다.
2.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쉽게 놓친다
만약 우리가 성경읽기를 쉽게 놓치거나 아예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잃어버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린 모두 이 부분에서 있어서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력한 헌신의 습관을 더욱 적극적으로 쌓아올릴 수 있다.
3. 헌신이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말 뿐이다
기도와 헌신은 우리의 요청과 원하는 바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진리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부수적인 자료들에 의존한다
조언, 묵상집, 신앙서적과 방송 등은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것도 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성경읽기를 다른 것들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의 의견과 대체할 수는 없다.
5. 좋아하는 성구만 선택해서 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맞는 한 가지 말씀보다 전체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