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9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믿음
몇 년 전 송구영신예배 때 있었던 일이다.
그해,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싶어서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일로 마음고생하며 수고한 세 가정을 선정하여 송구영신예배 때 앞으로 모시고 기도와 격려도 해드리고 선물도 드리기로 했다.
그때 초청하여 앞으로 모신 가정 중에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아직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가슴 아프게도 그 어린 아기에게서 신경모세포종이란 일종의 암이 발견되어 항암 투병 중이었다. 어린 아들의 투병 과정을 돌보면서 그 젊은 부부가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겠는가? 그날 젊은 부부는 참 많이도 울었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연락을 했다. 그러자 아이 엄마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왔다. 아이가 생후 50일 되던 무렵 원인 모를 고열로 소아과에 들른 것으로 시작하여 눈물 나는 투병 생활이 담겨 있었다. 어린 아기에게 주사바늘을 꽂는 것만 봐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지난 아픔이 그 메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글 중에 내 마음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붉어진 대목이 있었는데, 아팠던 시간을 담담하게 피력하던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 엄마는 이런 고백을 했다. “지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갔고, 슬프고 우울할 것만 같던 시간이 감사로 채워졌습니다.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사의 내용이 내 삶에 가득합니다.”
투병 생활 중에 엄마가 누릴 수 있었던 감사가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성도들이 삶의 고난 가운데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부부관계 때문에, 자녀의 일탈 때문에, 병을 만난 것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것 때문에…. 그러나 그 고통 중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할 때, 그 과정을 되돌아보니 아픔만 있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감사로 채워졌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가 아프리카로 달려가야만 사명을 감당하는 게 아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무겁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을 이겨내려고 수고하고 애쓰는 그 모든 몸부림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택정함의 비밀을 알려주셨기에 나는 반드시 이 고비를 이겨내야 한다’라며 이를 악물고 견디는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들지만 오늘도 우리가 머문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로 구별하여 택정해주신 그 사명을 깨닫고 집중력 있는 인생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 이찬수 목사 『복음으로 산다』중-
오늘의 찬양
내가 주인 삼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 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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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 보는 곳이 주님이 바라보는 곳일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주님도 그렇게 여기실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찬양 속에서 영혼 깊은 곳을 열어 보자.
돌아보니 우리는 늘 부와 건강과 명예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해 온 듯하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며 인생이 의미 없이 끝나 버릴까도 두렵고 내 삶 속의 여러 관계가 깨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두려움들이 우리를 사로 잡고 우리는 편협한 마음과 욕심의 종이 되었다.
“주 앞에 모든 것 내려 놓고” 라고 목소리 높여 찬양하며2020년 한 해 열심히 살았을 당신에게 물어보고 묵상하라. 내가 잡으려고 달려간 목표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조급함 대신, 실패 조차도 감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를 간구하는 송구영신의 결단을 하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헛되이 잡을 것을 내려 놓을 때 우리 인생의 풍랑이 잠잠해 지고 ‘참된 평안’은 우리의 정체성이며 삶의 근거가 됨을 믿으며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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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찬양
보혈을 지나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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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자원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이렇게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우리를 위해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물과 보혈을 다 쏟아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오직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슬픔 중에도 기뻐하고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살아가는 힘입니다.
성경은 교회, 즉 성도의 가치를 정의할 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귀한 보혈을 흘려 교회를 사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와 성도는 그 무엇보다도 고귀합니다. 땅 위에 있는 구원받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고 예수님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님의 보혈로 신령하고 참된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세상을 이기는 활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 교회와 사역
달콤한 유혹은 끔찍한 덫
어떤 사람은 악을 피하지 않고, 죄를 계속 지으면서 “하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시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죄의 유혹은 달콤한 것이 아닌, 끔찍한 덫일 뿐이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가로 막히게 되고 나는 점점 망가진다. 점점 만족하지 못하고, 유혹을 따라 더 크게 죄를 짓고 결국 죄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게 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마귀는 그렇게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지옥에 가 버리길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죄를 예수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며 주님앞에 나아가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 먼저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예수님께서 주인 되셔야 더 많은 마귀가 다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악을 피하며, 내 약한 부분을 마귀가 흔들지 않도록 주님께 지켜 달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의 가장 약한 신앙의 고리는 무엇인가? – 물욕과 명예욕, 분냄과 시기, 불평과 불만, 이간질과 경솔함, 교만과 우월감, 고집과 고정관념, 좌절과 열등감, 게으름과 안일, 외식과 강팍함, 불안과 우울, 거짓 만족과 소망 없음. 나는 “원래 그렇다.”는 자기 변명은 접고 예수님께 나아가 힘을 얻어야 한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아요.”라고 솔직히 말하면서, 유혹을 주는 마귀의 공격에 담대히 대적해야 한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죄의 씨앗은 점점 자라기 시작한다.”고 경고했다. 무도한 죄인도 작은 죄의 씨앗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 한다.” 라고 외쳤던 것이다.
중독이 되버린 견고한 죄의 진은 한번에 무너지지 않지만, 계속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의 용서와 사랑은 우리를 점점 자유케 하실 것이다. 매일 성경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반드시 고쳐지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삶 속에서 주님과 함께할 때, 묶임은 점점 사라지고, 진정한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오늘의 찬양
완전하신 나의 주 (예배합니다)
완전하신 나의 주
의의 길로 날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일
주님의 영광 다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만 날 다스리소서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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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서 있는가. 잘 준비된 찬양을 듣기 위해, 한 주 동안 도움이 될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맞다.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완전하신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준비된 예배를 드릴 각오가 전제돼야 한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게 하려면 예배순서나 목회자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전심으로 돌리고, 하나님을 더 알기를 목말라해야 한다. 훌륭한 예배 팀, 세련된 진행, 멋진 악기와 오디오만으로 예배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정말 좋은 예배를 만드는 성도가 되야 한다. 예배에 전심으로 헌신하는 회중이 되어 풍성한 예배를 위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으로 준비하기를 간절히 구하자. “완전하신 하나님, 우리를 무릎 꿇게 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소서.”
>>> 교회와 사역
유혹의 시대에 결단하라
유혹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결단하라’는 것이다. 최근에 도전이 되는 경구 하나를 보았다. “포기한 자보다 더 비열한 자는 시작도 하지 않는 자이다.” 또 최근 화제가 되었던 책 중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내 눈길이 머무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다 갖추고 성공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다니는데 들여다보니 자기만의 방향이 없고 가치 기준이 없는 것,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때야 하겠는가.
주님, 그 어떤 것보다
주의 말씀을 위에 두게 하시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는 믿음 부어주시옵소서.
여호수아는“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결단하고 선포가 하였기에 우상들이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맞닥뜨렸던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우리도 여호수아의 선포를 함께 선포해보면 좋겠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결단하라.
우리가 이렇게 결단하면서 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암살〉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영화배우 이정재가 맡았던 염석진은 독립운동을 해왔으나 변절하고 자기 동료들을 배신했다. 앞에서는 독립운동가인 것처럼 활동하면서 뒤로는 일본에 독립운동가의 작전과 명단을 넘기는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한 것이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된 그에게 여주인공인 전지현이 맡았던 독립운동가 안옥윤이 묻는다. “왜 동료들을 팔았나?” 한때는 함께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이였으니, 그를 죽이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는가? 그래서 원망하듯 질문한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염석진의 대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희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그들이 이 나라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던 것처럼, 너무나 악한 바벨론 같은 이 시대에 신앙생활 하는 우리는, “마라나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꿈꾸고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변절하고, 무너지고, 타락하고 마는 비극을 맞게 된다. 언젠가 반드시 맞게 되는 종말인데, 우리의 마지막 날 이것이 우리의 절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종말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지. 알았으면 그랬겠나?”
이런 부끄러운 고백으로 끝내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다니엘처럼 도전하고, 뜻을 정하여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꿈꿔야 한다.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굳게 믿는 그 소망이 우리를 변절시키지 않는 능력이 될 줄 믿는다. 지금 이 시간부터 다시 선포하고 도전하자. 그래서 우리의 삶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드리워진 우리 인생의 담을 껑충 뛰어넘는 작은 도전과 작은 성취감을 맛보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 이찬수, 세상에 믿는 자로 산다는 것 –
오늘의 찬양
돌아서지 않으리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 뒤돌아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와도 수많은 유혹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난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 /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
세상등지고 십자가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 뒤돌아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와도 수많은 유혹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 난 붙들리라
세상이 이해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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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매 순간 우리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겠다.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선택이고 항상 기도록 삶이 공유되고 항상 감사할 수 있기를 간구한다. 물론, 수시로 이 결단이 무너진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아야겠다. 그것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이기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아, 맞다!”고 생각될 때 찬양하자. “주님 뜻대로 살고 뒤 돌아 서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