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1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5/30/2021)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도 판단하려 든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 중에 의외로 교회와 관련된 상처가 많고, 그로 인해 판단의 영에 붙들리는 경우도 많음을 보았다.
2004년 여름, 몽골에 온 한국 단기선교팀 중에 나를 기도와 물질로 섬기고 후원하는 한 권사님이 있었다. 당시 허리가 안 좋았는데, 내게 기도를 받으면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무리해서 단기선교를 왔다고 했다.
권사님과 허리를 놓고 기도하는데 앞이 캄캄하고 빛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다시 따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의 말씀을 권사님에게 주셨다.
알고 보니 권사님이 출석하는 교회의 당회가 목회자를 내보내려는 문제로 분열이 되었고, 그 와중에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어 몽골 단기선교팀 후원이 중단되는 사태가 생겼다. 그러면서 권사님이 담당 장로님들과 많은 논쟁을 했고, 그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판단이 권사님 마음에 가득했다. 나는 권사님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권사님 안에 있는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장로님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사님을 위해서입니다. 판단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는 영혼들을 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질병도 낫지 않을 것입니다.”
권사님이 많이 울었다.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시니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는 않고, 내려놓기 싫은 마음과 싸우는 과정이 기도 가운데 계속되었다. 권사님과 기도하면서 판단하는 마음의 뿌리가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았다.
이후에도 대부분 아픔의 뿌리에 같은 교우에게서 받은 상처와 판단과 원망의 마음이 있었다. 판단하는 마음이 있으면 영적으로 순결할 수도, 건강할 수도 없다.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도 판단하려 든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묻곤 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하나님은 과연 선한 분이신가?’
하나님이 옳은 분인지 그른 분인지, 신뢰할 만한 분인지 아닌지를 우리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순종했다. 당시 사람을 죽여 제사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방 종교의 풍속이었다. 인신 제사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그분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했다.
우리는 때로 자신도 판단하며. 괴로워한다. 나를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를 판단하는 마음도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판단하는 마음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든다. 이 부분은 신앙의 열심이 앞선다고 여겨지는 선교사도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는 자칫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사역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힘들어할 수 있다. 이는 각자를 하나님께서 최적의 상황에서 훈련시키시며, 또 그분이 우리의 처지에 깊은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 발생한다.
내가 믿는 영적인 진리 중 하나는 연합을 통해서만 부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나도 잠시 목회자로 파송 받고 안정된 후원을 확보하고 온 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깨달음이 있었다.
‘네게 안정이 더 필요하니, 아니면 내가 더 필요하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커서 그 어떤 걸로도 바꿀 수 없음을 확인했을 때, 그 부러움이 내 안에서 사라졌다.
또한 지위와 신분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힘들어하는 일이 갈등과 상처가 된다. 문제는 내 존재가 상대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에 있다. 이것이 서로를 판단하며 상처 받게 한다. 내 존재는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 있음을 깊이 묵상함으로써만 우리는 서로 찌르기 쉬운 판단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떤 선교지에서는 기존 선교사들이 새로운 선교사가 들어올 때 경계한다. 혹여 자신의 사역 영역이 줄 걸 걱정한다. 반면, 후임 사역자가 잘되도록 최선을 다해 섬겨주는 사역지나 사역 단체에는 언제나 연합이 일어나고 사역의 열매가 맺히는 걸 본다.
연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더 잘되기를 빌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를 높여주면 사단이 우리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침투하려는 통로를 막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더 성장하고 당신의 사역이 내 사역보다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사역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서로의 사역을 축복하시고 놀라운 사역의 길을 열어가시리라 믿는다.
[리커버 에디션] 내려놓음, 이용규
>>> 삶과 신앙 (5/23/2021)
모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
사도적 성회, 즉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 출석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신앙인의 모임이 너무 지루한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많은 이유를 붙인다. 그러나 사실 원인은 딱 하나인데, 그것은 우리의 심령이 냉랭해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제까지 항상 해왔던 것은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과거의 은혜를 추억하고, 미래의 은혜를 기대하며, 성경의 뜻을 살피고, 거룩한 찬송가를 부르며, 간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신자들의 모임에 강하게 끌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교회는 성회, 즉 하나님의 교회인데 우리가 모임을 갖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가 모이는 것은 차마 거부할 수 없는 관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본성은 함께 모이는 것이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행 4:23)라는 말은 하나님 백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또 다른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다른 신앙인들이 내게 필요 없다고 느낄 때야 말로 그들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때이다. 개인으로서의 신앙인에게는 신앙 모임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신앙인에게 말씀하실 수 없는 것을 신앙인 모임에 말씀하실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집단에게 말씀하실 수 없는 것을 외롭게 기도하는 개인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의 신앙이 설교자의 설교에 의존해야 한다면, 당신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영혼의 샘물까지 연결된 개인적 파이프가 당신에게 없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목회자가 없다 할지라도, 지난 1년 동안 설교를 듣지 못했다 할지라도, 당신이 직접 그 샘물에 갈 수 있다면 당신에게는 닻(뿌리)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생수를 받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와 반대되는 경우도 성립된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란, 하나님께서 홀로 있는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없는 것을 교회 안에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개인기도를 해야 하지만, 우리의 개인기도는 공중기도에 의해 수정되고 균형 잡혀야 한다. 우리는 혼자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또 공중집회의 성경강론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정기적으로 회당에 가셨다.
초대교인들은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만났다.
그러므로 모임에 나가라. 주님이 그분의 방법으로 인도하심으로 당신은 진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분이 모임에 나가셨으므로 우리도 나가야 한다. 주님은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이면 특별한 복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셨다(마 18:20).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역사적 전통이다.
– A.W. 토저, 『하나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이신다』
힘도 아닌, 능력도 아닌, 오직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되기에
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만하라고 할때가 그만할 때이지 우리가 미리 포기하고 물러나면 안됩니다.
질 수 밖에 없다는 말에 속지마십시오.
예수님은 내가 이미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기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지금 마귀에게 지는 것 같고,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기도하며 노력할 때,
주님은 그 흘린 눈물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최악입니까? 앞이 캄캄합니까?
그래도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는 할 수 있잖아요!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 삶과 신앙 (5/16/2021)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않는 방법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헛된 일이 된다.”
한국문화는 나이에 민감하다.
그래서 제약을 받는 나이가 되기 전에 사회적 안정과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늘 외친다. “속히 주시옵소서.”
나 또한 이십 대 후반까지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았다. 빨리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실 걸 신뢰했지만, 그 타이밍에 있어 하나님의 계획과 내 계획이 달랐다.
바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중독 증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 같다. 바빠 보이는 게 미덕이 되고 너무 바쁘다는 말을 자랑처럼 하기도 한다. 일과가 끝난 저녁에는 늘 약속을 잡아 지속적으로 여러 사람과 관계의 끈을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 같은 불안이 엿보인다.
이런 노력의 배후에는 시간을 잘못 경영하면 인생을 허비할 수 있다는 불안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조건 시간을 아끼려고 노력한다고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게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며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분을 순전히 의지할 때, 우리는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세월을 아끼라”(엡 5:16)라는 성경구절은 많은 경우에 더 열심히 물리적 시간을 절약하며 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할 때 사용된 단어는 카이로스로 하나님의 때를 말한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물리적인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기회를 잡는 데는 소홀할 수 있다. 무의미하게 믿음 없이 반복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무의미한 반복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오랫동안 열심히 작업한 것이 무의미하게 끝나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도 수개월 이상 열심히 수집한 자료가 나중에 무의미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신앙생활이라고 믿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작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이루어진 게 없었다.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병자들이 넘쳐났고 믿지 않는 사람과 죄인투성이였다.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예수님은 너무나 많은 걸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완벽한 스케줄과 타이밍 가운데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걸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인류 구원의 계획을 신뢰하면서 당신이 받아야 할 고통의 잔을 받으셨다.
그래서 그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계획이 다 이루어졌다고 고백하실 수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읽고, 그 기회를 잡으셨다.
기억하라.
신앙생활이라고 믿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용규 『내려놓음』
오순절 / 성령강림절
–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던 것(행 2:1-13)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부활절 이후 50일 째 되는 날에 기념합니다.
– 올해에는 5월 23일(주일)이 성령강림일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 명령에 순종해 한데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오순절을 맞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기도하던 중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행 2:1). 기독교에서 성령강림절은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3대 절기로 꼽힌다. 특히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일’로 기념되고 있다.
성령강림절은 유대교의 3대 절기인 ‘오순절(Pentecost)’과 같은 날이다(레 23:9-11). 구약에서 오순절은 ‘5’를 뜻하는 헬라어(펜테)에서 파생된 말로 ’50번째 날(축제일)’이란 뜻이다.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구약 3대 절기인 ‘칠칠절(출23:14-17)’에 대한 헬라식 표현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 다음 날부터 계산해 50일째 되는 날에 행해지는 감사절기를 이른다.
또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확장과 성장을 도모하는 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역사와 인도와 충만을 기도하게 된다. 우리는 그날밤, 살과 피를 나누어주셨던 예수님과 오순절에 임하셨던 성령을 기억하며,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우리 신앙의 열매가 무엇인지 헤아려보아야 한다.
>>> 삶과 신앙 (5/9/2021)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4가지 비결
우리들에게 있어서 안식처와 같은 곳이 있다면 어느 곳일까? 바로 가정이다. 가정이 안식처가 되려면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자녀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화평한 관계를 맺고 살아야만 한다.
한마디로 부모도, 자녀도 머물고 싶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언쟁이나 싸움이 중단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1. 하루해를 넘기지 말고 화해하라
집안에 싸움이 자주 있으면 먹을 것이 있어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 자체를 내지 말라 하시지는 않았다. 삶 속에서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분이든 하루해를 넘겨서 분을 가슴속에 품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가정 구성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가족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는 서로를 향한 높은 신뢰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과 높은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가족들 간에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서로 간에 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말씀에 기준을 두는 것은 내 삶을 행복하게 한다. 나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루해를 넘기지 말라”라는 말씀 때문에 분노를 털어 버리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자신은 물론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2. 서로를 향한 믿음을 절대 고수하라
‘잔소리’의 정의는 ‘좋은 말을 듣기 싫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어감을 제외하고서 하나하나 곱씹어 생각해 보면 좋은 말만 반복한 것이다.
비록 좋은 말을 나열해 반복한 것이지만 잔소리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강함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고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반복하는가? 왜 좋은 말을 강하게 할까?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좋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해 보라. “자녀에게 30분 권면해야 한다면 먼저 그 자녀만을 위해서 30분 기도하고 나서 권면하리라.” 쉽지 않지만 실천해 보라.
3. 서로를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라
우리의 삶에서 왜 언쟁을 하는가? 상대가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소리를 하니까 답답해서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성품은 예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이다. 우리 주님은 죄로 인해 상처가 나 버린 마음을 다 아신다.
사람에 대한 상처, 가난에 대한 상처, 인정받지 못한 상처, 버림받은 상처 등을 다 아시고 공감해주신다.
4. 마음을 여는 대화법으로 대화하라
자녀와 행복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능숙함이 필요하다. 능숙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추궁하는 언어가 아니라 “나는 네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 등 아이 메시지를 사용하고, 일반화하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평생 한 번도 나에게 헌신하지 않았잖아”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헌신하지 않아도, 조금만 마음을 돌이켜 결단해도 믿고 기뻐하며 반응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상대방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인내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 『크리스쳔을 위한 행복한 인생학교』
>>> 삶과 신앙 (5/2/2021)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나는 부모학교 강의를 할 때마다 “자녀는 부모가 얻어야 할 한 영혼이다”, “자녀는 이미 얻어놓은 영혼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자녀를 내 육신의 자녀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한 영혼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둘째, 자녀의 마음을 얻고 그 마음 밭을 준비시켜서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심고 가꿔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을 믿는 나의 자녀로 태어나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그의 구원은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넷째, 한집에 사는 내 자녀라도 언제든 세상에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보내신 한 영혼이다. 그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보호하며 또 훗날 효도를 받으면서 부모 자녀 간에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누려야 한다. 하지만 그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심고 가꾸며 부모인 나에게 임하신 하나님을 부모의 삶과 이야기로 전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 일을 위해 그 아이의 부모가 되게 하셨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창 18:19).
이렇듯 부모는 가정을 ‘작은 교회’로 여기고 자녀를 ‘한 영혼’으로 보며, 부모 자신은 가정의 ‘영적 리더’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부모들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시달리며 너무 고단하고 지쳐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지 못한 채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붓지만 삶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러다 보니 자녀에게 신앙 교육보다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자신과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 같아서 괴로움을 느끼지만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주일이 된다.
부모가 자녀의 영혼을 세워주고 무장해야 할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어느새 자녀는 부모를 닮은 성인이 되어 있다. 그런 신앙의 대물림을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텐데 말이다. 자녀들이 사는 이 세상은 악한 영이 두루 다니며 끊임없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부모가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전제조건을 살펴보자.
1. 자녀의 마음을 알아준다
자녀의 영혼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자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때 부모의 묵직한 진심이 필요하다. 내 자녀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자녀의 학습에 온 신경을 쓰지만, 실은 영민한 자녀일수록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때 행복감을 느끼며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한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줄 때 부모 자녀 간에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때 비로소 부모가 영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2. 부모가 모범을 보인다
부모의 좋은 가치관과 선택은 직접적 으로 강요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부모가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이지만 확실하게 교육할 수 있다. 부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일일이 말로 가르치지 말고, 부모 자신의 행동에 신경을 써서 모범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친구들과 잘 지내라고 하기 전에 부모가 주위 사람들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기 전에 맡겨진 부모 역할에 행복하고 성실하게 임한다면 자녀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부모의 모범이야말로 자녀의 영혼을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전제조건이다.
3.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한다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며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또 자녀의 장래를 다 아는 양 거침없이 그들의 앞길을 좌우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여 자녀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는 것이 세 번째 전제조건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 3:5-7).
크리스천 부모는 내 자녀를 한 영혼으로 바라보고 자녀의 영혼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부모이다. 자녀의 영혼을 세상과 악한 영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자녀 또한 무장시키는 부모이다. 세상을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심하는 부모이다. 물론 이 모든 노력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사실을 마음이 깊이 새기고 자녀의 영혼을 얻고 세상에 빼앗기지 말자.
– 박인경, 『부모 면허』
부모의 조바심이 아닌 주님께로 나와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 이용규, 『가정, 내어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