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24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3월 31일 2024)
부활의 소망
우리는 기도하면서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실 거야! 이렇게 하실 거야!’ 하지만 그 기대와 다르게 상황이 펼쳐지면요? 실망합니다. 기도가 점점 멈춰집니다. 슬픔에 지쳐 잠들어버립니다. 마치,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처럼요. 다 끝났다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깨어서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계속 기도한 결과는?
최악입니다. 예수님은 잡혀가고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홀로 되셨습니다. 뺨을 맞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통 당하시다가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완전한 실패.
‘기도해도 안 된다.’ 는 말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하나님은 왜 침묵하실까요?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님을 이제는 우리도 압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다 끝났다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부활주일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기도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잠든 제자들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그 자리로 나아옵시다. 하나님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다. 기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진실되고 겸손하게 계속 기도합시다.
“아버지. 너무나 지치고 힘듭니다. 실망스럽고 슬픕니다. 다 포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굳게 믿는 믿음을 부어주셔서, 끝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주님이 기도하시는 그 옆자리에 엎드립시다. 모든 마음을 다 토하며 주님을 기다립시다. 주님은 좋으셔서 계속 나아오는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우리 문제는 작게 보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커 보이게 만든다.
아무리 셀프 토크 (self-talk) 로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부르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은혜 받고자 한다면 십자가 부활에 깊이 침잠하라.
— 김응국, 『부활』 —
>>> 삶과 신앙 (3월 24일 2024)
사순절 묵상
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은혜로운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I. 예수님의 고난 주간 행적
1. 주일: 예루살렘 입성, 마 21:1-17, 스가랴 9:9
2. 월요일: 성전청소, 막 11:15-18
3. 화요일: 율법/권위 등에 관한 논쟁, 막 11:20-13:37
4. 수요일: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 마 26:14-16
5. 목요일: 최후의 만찬/기도(겟세마네), 마 26:17-46
6. 금요일: 심문과 재판/십자가형, 마 26:47-27:56
7. 금/토/주일: 무덤에 계심, 마 27:57-66
8. 주일새벽: 예수님의 부활, 마 28:1-15
II.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7 말씀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요 19:26~27)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
5.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6. 다 이루었다! (요 19:30)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III. 십자가 수난 직후의 사건들
1. 지진과 성전 휘장이 찢어짐, 마 27:51
2. 무덤이 열림, 마 27:52
3. 백부장의 고백, 마 27:54
4. 무리들의 뉘우침, 눅 23:48
5. 도적들의 다리를 꺾음, 요 19:32
6.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름, 요 19:34
7. 무덤에 장사함, 요 19:38-42
8. 무덤을 봉하고 파수꾼을 세움, 마 27:66
우리의 ‘생각’을 성경의 ‘기준’으로 새롭게 하는 5가지 (1)
여러분이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때론 이성었다가 감정이었다가 말씀이었다가…늘 바뀌지 않는가?
크리스천은 생각의 기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까? 자기 생각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자기 생각을 생각하게
하는 권위 있는 생각, 즉, 성경의 기준에 맞춰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자기 생각의 함정에 빠진다.
1. 소문 VS 진리를 분별할 때
한 사회에서 보이지 않으나 가장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은 소문이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때 가장 먼저 공격했던 영역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도 확신이 없는 이유는 진리의 말씀을 소문 정도로 듣기 때문이다. 또한, 옥한흠 목사님은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면 무조건 믿지 말라”라고 조언한다. 진정한 삶의 변화는 소문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난다. 관계의 회복도 자신이 들은 소문을 내려놓고 진리를 나눌 때 얻을 수 있다. 진리를 붙잡으면 소문은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2. 믿음 VS 불신 사이에서 도전할 때
믿음은 기대를 만들고, 불신은 염려를 만든다. 사탄의 불변 전략이 있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고,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모두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청사진 대신 나침반을 주신다. 하나님이 현재 보여 주시는 방향으로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인생은 변화되지 않는다. 성경은 “창조주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차게 하라”라고 말한다(전 12:1 참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 이재훈, 『생각을 생각한다』 —
>>> 삶과 신앙 (3월 17일 2024)
사순절 묵상
구약성경은 많게는 600여개, 구체적으로 100개의 메시야 관련 예언들을 제시한다. 메시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구약성경은 이에 관해 명확하게 예언했다.
10. 사람들은 예수님을 옷을 제비를 뽑아 가졌다. 시편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요한복음 19:23-24
11. 예수님은 “나의 영혼을 당신의 손에 의탁합니다.” 외치셨다. 시편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누가복음 23:46
12.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다. 시편 31: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마가복음 14:50
13.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의 죽음을 공모했다. 시편 31: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마태복음 27:1
14. 예수님은 고소하는 사람들 앞에 침묵하셨다. 시편 38:12-13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마태복음 27:12-14
15. 예수님의 시신은 썩지 않았다. 시편 16:9-11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성도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사도행전 2:31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치유될까?
몇 년 전, 내 잘못도 아닌데 나에게 윽박지른 그 남자가 생각났다. 다시 몰려오는 수치심과 분노. 가서 따지고 싶다. 왜 그랬냐고…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치유될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치유되지 않는 것은 바로 상한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기억의 중심에서 잠시 자리를 이동한 것일 뿐 완전한 치유는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함을 봅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것, 상한 마음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치유하려 해도, 잊어보려 해도, 내 능력 안에서는 그 어떤 가능성도 찾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해 보려 발버둥을 치고, 사람을 통해,약물을 통해, 심지어 옳지 못한 방법들을 통해 이뤄내려 하지만 잠시의 망각이 주는 해방감과 그 이후로 더 심하게 밀려오는 죄절감을 몸서리치게 경험해야 함을 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스스로 해결하려 발버둥쳤던 시간들의 수고를 이제는 내려놓습니다. 삶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품지 않고, 오직 어미의 품에서 만족하는 어린 아이처럼 주님 안에 내 삶을 포개놓습니다.
능하신 주님, 당신만이 온전한 치유자 되심을 믿습니다.
— 임동수, 『고맙다, 오늘도 버텨주어서』 —
>>> 삶과 신앙 (3월 10일 2024)
사순절 묵상
구약성경은 많게는 600여개, 구체적으로 100개의 메시야 관련 예언들을 제시한다. 메시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구약성경은 이에 관해 명확하게 예언했다.
4. 예수님은 높이 매달리셨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면 영생을 얻는다. 민수기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요한복음 3:14-18
5. 예수님의 부활은 예언되었다. 욥기 19:23-27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요한복음 5:24-29
6.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셨다.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마태복음 27:46
7.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조롱당하셨다. 시편 22: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마태복음 27:42-43
8. 고난 중 예수님은 갈증을 호소하셨다. 시편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요한복음 19:28
9 예수님은 손과 발을 못에 찔리셨다. 시편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요한복음 19:35-37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어 주셨다!
누구나 위기의 때에 자기에게 익숙한 것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돈이 익숙한 사람은 돈을 찾고, 사람이
익숙한 사람은 사람을 찾습니다. 위기에 부딪히고 보니 기도는 익숙한 저의 환경이었을 뿐, 실제로 제게 익숙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저처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기도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문제만을 기도하다가 점차 다른 사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 기도의 문제는 나를 중심으로, 나와 연관된 일들로 확장되는 기도라는 점입니다.
동심원의 중심은 항상 ‘나’입니다. 기도를 이끄는 동력이 ‘나’이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거나 나와 관계가
끊어지면 자연스럽게 기도도 힘을 잃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이 계시니 아프리카를
위해서 기도하고, 내 아들이 군대에 가 있으니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제대하면 나라를 위한 기도도 잊어버리게 되고, 우리 교회 선교사가 없는 나라의 기도도 안 하게 됩니다.
내 문제를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조차 초점이 ‘나’인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기도하는 순서가 아니라 기도를 이끌고 있는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입니다. 나로 인해서 시작되는 기도, 즉 동심원의 중심이 ‘내가’ 되는 기도의 문제는, 문제가 생기면 다급하게 기도하다가 문제가 없으면 느긋해지다가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와 ‘기도’가 다릅니까? 나를 위한 기도는 그냥 기도이고 남을 위한 기도는 중보기도입니까? 중보기도는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인 것 같고 교회를 위한 기도 같아 보여도 다 나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토록 간절했던 것입니다.
교회와 주님의 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는 교회 성장과 목회 성공을 원하는 내 안의 욕망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기도가 주님도 기뻐하시는 중보기도일거라고 스스로 속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를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 박 리부가,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 —
>>> 삶과 신앙 (3월 3일 2024)
사순절 묵상
구약성경에서 많게는 600여개, 구체적으로 100개의 메시야 관련 예언들을 제시한다.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살펴보고 있다.
17. 예수님은 죄를 끊으셨다. 다니엘 9:24, 25-26 “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1:3-5
18. 예수님의 입성에 예루살렘과 주민은 기뻐했다. 스가랴 9:9 “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마태복음 21:8-10
19. 예수님은 은 30에 팔렸다. 스가랴 11:12-13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마태복음 27:6-10
20. 요한은 엘리야의 영으로 예수님을 소개했다. 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