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4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6월 30일 2024)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깨어 기도하고 있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나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을
기도보다 더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피곤하고 지쳐서
잠든 제자들처럼 되어 버렸다.
그때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부드럽게 물음표를 던지신다.
“왜 자고 있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 한홍,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 —
>>> 삶과 신앙 (6월 16일 2024)
(아내와의 언쟁은 항상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다.)
한번은 거실에서 아내와 언쟁이 벌어졌다. 항상 그렇듯, 별일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쓰레기봉투가 화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아내보다 먼저, 묶여 있는 쓰레기봉투가 나를 맞았다. 아내는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했고, 나는 가장의 자존심을 내세워 집안일이 싫다고 했다.
언쟁 도중에 화가 나서 현관문을 ‘쾅’ 닫고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었다. 거기서 5분도 지나지 않아 내 감정과 마음은 바뀌었다.
문을 괜히 세게 닫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에 크게 반응하다니, 내 모습이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후회막 심이었다.
아내가 옳고 내가 틀렸음이 보였다. 미안했다. 홀로 있기를 멈추고 다시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내에게 화냈던 이유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하다보니 마음이 다시 꼬였다. 이전보다 더 큰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또 ‘내려갔다’. 아무도 없었고, 마음이 후회로 뒤바뀐 것은 홀로 지낸 지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집에서만 이런 게 아니다. 나는 자주 외로움의 자리로 ‘내려간다’. 인생사 다른 일들도, 교회 사역에 대처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별일 아닌 걸로 문제가 커지고, 고통 가운데 나는 홀로 있게 된다. 잠시만 혼자 시간을 보내면 생각은 곧 바뀌고, 문제에 대한 대처도 달라진다. 성장한다. 패턴이다.
홀로 남아 하나님을 독대하는 일은 사람을 바꾼다.
E. M. 바운즈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더 나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나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부탁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성장을 위함이다.
새로운 결단
영적 멘토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훈련자시니 그분과 긴밀히 만나는 사람은 성장한다. 하나님이 쓰시기 편한 도구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인물로 성장한다.
사람은 주로 어떤 자원이나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만났을 때 혼자만의 자리로 떨어지게 된다. 고통이 사람을 혼자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홀로 남는다는 것은 부정적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은 연약함을 느낀다. 건강이나 그동안의 이력과 같은 자기 보호막이 고통의 문제로 다 사라지게 되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무기력감, 외로움, 좌절감, 우울함, 분노 같은 온갖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홀로됨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도 있다.
사람은 막상 홀로되면 그제야 쉴 수 있다. 비록 고통 가운데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제야 차분해진다. 생각을 정리할 짬을 얻는다.
우선순위를 재점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홀로됨의 유익이다.
하나님과 단 둘의 시간을 보낸 성경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창 2:18). 하지만 무언가와 함께 있느라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사람은 다 죄인이다(롬 3:10). 죄인들의 공통점은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대체할 의지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때 선택하는 것은 주로 자기 자신이다. 좀 더 펼쳐서 말하자면, 자신의 힘과 경험, 자기 성취와 그에 따른 인정, 자신을 돕는 사람들이나 시스템, 어떤 철학과 신념, 그밖에 자신이 선호하는 어떤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따른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신 31:6, 히 13:5).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의 아버지시다(신 4:31).
성경의 원리대로라면, 누군가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게 될 때 사랑의 주님은 그를 홀로되게 하심으로써 그를 되찾아 오실 것이다. 기존에 의지하던 온갖 것들로부터 고립시키심으로 하나님께 집중할 환경으로 안내해주실 것이다.
— <나홀로 예배> 송준기 —
>>> 삶과 신앙 (6월 9일 2024)
주님의 마음을 흡족케 하는 방법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사역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목회 핵심 가치와 삶 속에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목사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이고, 예수님을 오래 믿어온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별된 삶을 산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길 원하며, 하나님의 손에 잡히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기 원한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기 원하는 가치관의 변화로 우리의 기도가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땅의 것들이 다시는 우리를 흔들어놓을 수 없다. 이 땅의 것들, 이 땅의 많은 문제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 없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고통과 아픔과 상처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달라진다. 우리의 삶의 가치와 삶의 질이 달라진다.
이제부터 우리의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은 나의 인생에 고통과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과 고난 속에서 나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의 어려움과 상처와 억울함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억울함 속에서 나의 반응이 달라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나의 인생의 고백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님은 ‘성도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장 불편한 자리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성도들의 자리가 편안한 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도들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자리가 참 불편했으면 좋겠다.
그 불편한 자리에서 성도들의 회개가 일어나고, 몸부림을 치며,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집중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붙잡게 되길 바란다. 그것이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 플랜팅 시드, 홍민기 —
새로운 결단
>>> 삶과 신앙 (6월 2일 2024)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진리가 필요하다)
예수님 관계를 잘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상처 때문에 때론 그냥 다 떠나 홀로 있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모든 관계들을 주님께서 다스려주시길 기도합니다.
가족이고, 가깝다고 해서 함부로 말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제게 잘못한 부분들이 있다면 생각나게 해주세요.
그 부분들을 고치게 도와주세요.
저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치유해 주소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관계라면 멀어지게 하시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지혜를 주소서.
잘못하는 그 사람도 변화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으로 할 수 없기에 주님의 지혜와 마음을 구합니다. 상황이 최악이라도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합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며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새로운 결단
상대적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가.
패배주의는 상황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신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기억하자.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다.
“믿음으로 선택하느냐, 불신으로 선택하느냐” 에 따라 기쁨을 얻기도 하고
슬픔을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