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9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성을 쌓는 자는 쇠하고, 길을 닦는 자는 흥한다.
기원전 3세기 동서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됐다. 중국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로마제국은 이 시기부터 약 500년에 걸쳐 로마 가도를 만들었다. 진시황은 이민족을 막는 성벽을 쌓았고, 로마제국은 세계로 연결하는 길을 내었다.
이런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로망이다. 로마인들은 로마에서 시작하여 제국의 영토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하여, 수송로를 만들었다. 도로는 적들이 침공할 때도 똑같이 이용할 수가 있어, 위험성이 있는 양날의 칼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도로 건설을 선택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로마가 흥왕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반면 중국은 길을 막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이 차이가 중국과 로마의 운명을 갈랐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중화(中華), 즉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면서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이는 중국인들에게 자긍심이 됐지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이기도 한 양날의 칼이다. 특히 만리장성 안에 있는 자신들은 중화, 성 밖에 있는 민족들은 오랑캐라고 더 확실히 분류했다. 그러나 오랑캐로 불리던 흉노족, 선비족, 몽골족은 자유자재로 만리장성을 넘었다. 만리장성을 쌓기 위한 과도한 세금과 강제적 노동력 동원은 오히려 진나라 몰락의 원인이 됐다.
이렇게 만리장성을 쌓는 사람이 있고, 도로를 닦는 사람이 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전형적으로 성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은 따로 기도하며 자신들을 의롭다 하며 다른 불의한 자 혹은 세리와 분리했다(눅 18:11). 바리새인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남에게 눈총 쏘는 사람, 만리장성을 쌓는 분리주의자의 모습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라며 구분짓는다. 기도의 내용도 그렇다.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 오랑캐, 자신은 좋은 사람이다. 우리도 그런 바리새인의 영성이 있어 교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반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도로를 뚫어 소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모든 벽을 허무시고, 그 경계에 꽃을 피우셨다(엡 2:14).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대표적인 초대교회인 안디옥교회를 보면, 소통하고 길을 닦는 감동이 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 13:1)
안디옥교회는 유력 가문 출신의 정통파 유대인인 바나바, 흑인 노예 출신의 시므온, 무명의 이방인 루기오, 유대인의 대적자였던 마나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이었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일을 했다. 또한 안디옥교회에는 선지자와 교사 등 은사도 각각이었다. 안디옥교회는 한마디로 서로서로 하나 될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벽을 허물고 진정한 사랑과 소통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만리장성이나 바벨탑과 같은 성을 쌓지 않는다. 대신 누구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라며 길을 연다. 하나님 나라의 길을 닦아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이다. 움켜쥐려는 자는 쇠하고, 나누어주려는 자는 흥한다. 성을 쌓는 자는 쇠하고, 길을 닦는 자, 그리고 그 길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흥한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으로 나와 다른 이를 인정하고 서로 격려하자. 한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 사역의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새로운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 gp.godpeople.com 말씀 테마 참고 –
오늘의 찬양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원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기는 커녕 나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며, 썩어져 버려야 할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옛 사람으로 살지는 않는지 돌아 보자.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새 사람이 되도록 결단하자. (에베소서 4 : 22 ~ 24) 그리고 오늘 예배를 통해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몸이 기쁘게 주님의 말씀하시는대로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로는 고되고 힘든 교회 사역이 짐이 아니라 삶의 평안과 위로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기에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기를 간구합니다. 약한 나는 오늘도 주님만 바라봅니다.
>>>
삶과 신앙
“예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내 마음이…”
1.끝을 아는 마음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곳에 살고,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여행을 다니며 호텔에서 아침 조식을 먹는 느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은 천국은 다시 군대에 간 것처럼 무게감을 받아들이고, 아이를 기르는 곳이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편하게 사는 곳이 천국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섬기며 살아가는 곳이 천국이다.나는 40대에 셋째가 생겨서 자유로움이 완전히 사라졌고, 삶은 달라졌다. 그런데 그곳이 천국이다. 예수님 계신 곳, 그분의 마음이 있는 곳이 천국이다.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모든 사람이 끝을 맞이한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라고 한다(전 7:2).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인생은 준비 없이 끝을 맞이한다. 생명을 알고 추구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의미를 모른 채 인생이 지나가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2.분별의 기준
은혜를 받고 욕심을 이루는 데 그 마음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은혜를 받은 마음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 욕심을 이루는 기회로 은혜를 사용하려는 마음을 분별해야 한다. 분별의 기준은 ‘기분 좋음’이 아니라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종’이 되어 살고 있는가에 있다. 지금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나중에 허탈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했을 때 좋은 기분이 전부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기꺼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즐거움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분별의 두 번째 기준은 내가 누구와 같이 있는가, 있고자 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내가 섬겨야할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좋으신 분이다.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아는 훈련된 사람, 예수님을 따르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책임감과 의무감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즐기라는 말을 조심하며 분별해야 한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없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3)
3.쉬지 못할 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들을 쉬게 하신다. 마음이 쉼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마 11:28-30).
우리가 겪는 수고와 무거움은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지 못해서 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나의 삶을 수고스럽고 무겁게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다는 마음이나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마음은 삶을 고통과 무거움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것이다. 어떤 마음이나 삶도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가 진정한 쉼을 얻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그분께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셨다.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를 매면 그분의 마음을 많이 받고 누리게 된다. 그때도 내 것으로 은혜를 만들지 않고, 계속 예수님의 마음으로 종노릇 할 수 있다면 점점 강건해질 것이다. 아무 일도 없어야 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만족하고 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의 종노릇을 할 수 있다면 쉬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의 종노릇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쉬지 못한다.
-김길 목사 /『제자도』 중에서 요약
오늘의 찬양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수 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소리치며 나아가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을 취하리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을 취하리니
이 곡은 한국에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나 단기선교를 준비할 때에도 많이 불리는 곡이다. 곡의 배경은 갈렙이 여호수아 14장 12절에 헤브론 땅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사실, 헤브론 땅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질 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하고,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후 주어진(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간 곳이었다. 헤브론의 또 다른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고 하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장사 지낸 후 살았다.
헤브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갈렙이 단지 믿음이 좋거나 희생정신이 강해서 다른 지파들이 가기 싫어하는 그 산지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요구의 근거가 ‘약소대로,’ ‘말씀대로’ 입니다.
우리의 찬양도 이런 고백이 되야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면서 모든 삶의 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시간에 맞춰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위해 살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간구하며 헌신하고 결단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 캄보디아 이상호 선교사의 글에서 –
>>>
삶과 신앙
삶의 도전 속과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영적 무기가 무디어진 형식적 크리스천 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그 첫 질문의 하나는 “매일 기도하고 계십니까?”일 것이다. 다음의 증상이 나에게 있는지 확인하며 무릎 꿇고 기도를 시작하자.
기도의 능력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5가지 신호
1. 너무 쉽게 걱정한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독립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불안에 대한 강력한 대안이다. 걱정할 때 우리는 나 자신, 직장 또는 외부 환경을 신뢰한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선포하는 기도와 간구를 통해 우리는 그분이 완성하신 십자가 사역에 의존하게 된다.
2. 스스로의 대안을 먼저 붙든다.
우리 스스로가 항상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기본값은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간절하고 신실한 기도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3.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는다.
이는 너무 분명히 들리는 말일 수 있다. 실제로 모든 상황에서 기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나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우리가 모든 일에 대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매번 당신의 모든 능력으로 나타나신다.
4. 지쳐버렸다.
당신이 지치고 피곤하다면,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그분의 이름으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모두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할 때,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가 올 수 있으며 우리의 깨어짐이 치유되고 자유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5. 진리로 거짓에 맞서서 싸울 수 없다.
성령님이 오셔셔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시를 통해 하늘의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달라고 기도할 때이다. 기도는 의사소통이며,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끊어질 때 하늘로부터 오는 진리가 사라진다.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의 능력의 터 위에 확실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알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크리스찬 투데이 (2019.8.27) / 영국 크리스찬 투데이 칼럼 내용
오늘의 찬양
보혈을 지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이 찬양을 작곡한 김도훈 목사의 고백을 함께 나누며 주님의 보혈을 다시 감사하고 그 보혈을 지나는 신앙으로 살자.
이 곡이 제게 들려지기 전, 기도 중 환상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앞이었습니다.
한 방울…한 방울…십자가 뒤 하늘 보좌로부터 보혈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보혈을 하나님의 눈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때 보았던 환상 때문입니다.
한방울…한방울…땅으로 떨어져 흐르며 시작된 보혈의 폭포가 점점 커지더니, 폭포수처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그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보혈의 피를 지나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피를 지나갈때, 모든 영혼들은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보혈을 지나 하나님 보좌로 나아갔으며, 이 땅에 모든 족속이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 회개…진정한 회개는 …보혈을 지나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씻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둘째, 기도. 중보기도는 보혈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우리의 것은 단지 보혈을 지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보혈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넷째, 선교. 이 땅의 모든 영혼의 손을 잡고 보혈을 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마음에 들려온 음성이었습니다. ‘보혈을 지나’는 그렇게 세상에 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삶과 신앙
“순종 없는 거짓 믿음을 버려라!”
순종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신앙보다 온전한 순종을 원하신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앤드류 머레이는 이렇게 가르친다.
“이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범하는 순종의 슬픈 본보기이다. 이런 순종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전적인 순종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와 불순종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삼상 15:3).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정말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면서 우리 안에 하나도 남겨두고 있지 않는지의 여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무리 세세한 부분이라 할지라도 온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네가 나의 말을 버렸도다’(삼상 15:26 참조)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순종하였다’라고 엉터리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장 순종은 운명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이다 중에서
“또한 즉각적으로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성경 말씀을 읽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제공하시는지 알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성경을 읽고서 거기에 순종하려는 어떤 진지한 노력 없이 단지 말씀을 경건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끔찍한 죄에서 지켜주시도록 기도하라!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룩한 습관을 길러보자. ‘주님, 제가 당신의 뜻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즉각적으로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기꺼이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라.”
4장 순종의 갈망은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중에서
“완전히 진심으로 전적인 순종을 서약하는 영혼은 빈약한 순종에서 좀 더 완전한 순종으로 자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점차적으로 자라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불순종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 내쫓아버리는 것, 결단, 위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은 오직 지금까지 잘못한 것들에 대한 아주 명확한 통찰과 더불어 부끄러움과 참회를 통해 깨끗이 죄를 고백함으로써 찾아온다. 오직 참회를 통해서만 그 영혼은 온갖 부정(不淨)으로부터 거룩하고 강력한 정화(淨化)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회개는 양심을 준비시켜 새로운 마음을 선물로 받게 만든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걸어가게 만들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전혀 다른 삶으로 인도받기를 소망한다면, 그리스도와 같은 순종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성령이 당신에게 온갖 불순종을 보여주어 죄를 자각하게 해달라고 간구함으로써 시작하라. 성령은 겸손히 죄를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제공하신 정화로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절대로 멈추지 마라.”
5장 우리는 어떻게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중에서
“강력한 소망 없이는 강력한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소망은 이 우주에서 가장 크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도록 하나님을 움직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열망이시다. 기꺼이 연구하고 일하고 고통당하도록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도 역시 소망이다.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만드는 것은 오직 소망뿐이다. 그와 같은 약속의 땅이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도 역시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더불어 하나님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교제를 향한 열망, 곧 정확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가능한 한 많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열망이다. 그리스도께만 전적으로 순종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은 열망이다.”
6장 완전한 순종은 완전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중에서
앤드류 머레이, 『죽을만큼 순종하라』
오늘의 찬양
하늘의 문을 여소서(원제: 임재) / 시와 그림 5집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 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 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묵상이 우리 것이어야 합니다. 입은 찬양을 부르고, 소리지르고, 시끄럽게 기도도 하지만, 어느새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이 찬양을 통해 ‘나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으로 기도로 올리는 진정한 산 제사의 예배로 회복되기를 기도합시다.
>>>
묵상 에세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사라졌을 때, 이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오늘 구원을 받았고, 내일 하나님의 말씀에 천착하게 되며, 그 후에 교회의 일원이 된다. 곧 주어진 능력 안에서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또 이럴 때, 우리 모두는 많은 시험을 받는다. 또한 스스로 압도당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가 눌릴 때,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김에 연약함과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멈춘 적이 없다.
여러분은 삶의 이같은 지점에 와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열정을 잃은 것처럼 느끼는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향해 불 타고 싶은가? 그러한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시고 다시 그 자리로 돌려놓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3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고, 여러분의 사랑을 원하심을 깨달으라.
계시록 2장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또한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열정을 갖고 있는지 아신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것도 아신다. 우리가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얼마나 감추거나 부인하려고 했는지는 상관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를 감출 수 없다.
2.마음의 솔직한 상태를 인식하라.
계시록 2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마음의 솔직한 상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씀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 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에 대해 정직해져야 한다. 왜 우리의 열정이 사라졌는가? 무엇이 하나님을 좇는 것을 막고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열정과 집중을 가져가버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마음과 힘과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중에도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가? 아니면 죄에 깊이 빠져 있는가?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우리는 정직하게 죄를 인정해야 한다. 오직 진리 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3.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라.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돌아오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해 열정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어떻게 열정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회개하고, 이를 돌이키면 된다. 이처럼 매우 단순한 것이다.
친구들이여, 여기는 어떤 기적이 없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절대적으로, 미친듯이 기도해 줄 어떤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 안에서 그분께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선택하길 기도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2016.11)
오늘의 찬양
해 같이 빛나리 (김석균 곡 / 다윗과 요나단 노래)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찬송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 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주님이 오실때 아름다운 저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음에 참여할지어다하고.” (마태복음 25:21)
또한, 우리의 섬김과 충성은 성경에서 가르치듯이 “함께” 나감으로써 더 풍성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두사 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겸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리라.” (전도서 4: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