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0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우리는 허탄한 것을 넘어서야 한다.
당신이 틈만 나면 하는 것은? 그것에 당신의 마음이 빼앗긴 것이 아닐까?
 세계에 널리 알려진 기독교 문학 작품, 존 번연의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에는 주인공 ‘크리스천’이 무거운 짐(죄)을 지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에 당도하는 여정이 그려져 있다. 이 여정은 ‘낙담의 늪’ ‘죽음의 계곡’ ‘허영의 거리’를 지나야만 한다.

크리스천이 성화의 길에서 반드시 거쳐 지나가야 하는 곳은 바로 허영의 시장이다.  허영의 시장에서 팔리는 것들은 모두 헛된 허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좋은 집, 좋은 땅, 명예, 승진, 욕정, 금은보화. 또 이 시장에는 정직하지 않은 자나 방종하는 자 같은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순례자들은 이 시장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늘의 도시로 갈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이 시장에 들어서면 시장 사람들은 그들을 주목한다. 그들이 허영의 시장 사람들과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옷이 달랐고 말이 달랐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옷이 다르다.’는 것은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말이다.바울은 우리에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엡 4:22)라고 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었다면 삶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가 세상과 다르지 않으려고 애쓸 때가 있다. 다른 것이 그리스도인의 매력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요즘 한국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상실한 이유도 바로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스타일도 똑같고, 똑같이 이기적이며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둘째, 말이 달라야 한다. 에베소서 4장 22절 이후는,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의 현저한 변화 중 하나가 언어임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말하라”(엡 4:25)고 가르친다.  안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제 우리는 참된 말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엡 4:29) 해야 한다. 선한 말은 덕을 세우며, 이웃에게 유익을 끼친다.

셋째, 관심사가 달라야 한다. 허영의 시장에서 사람들이 사고자 하는 것에 순례자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순례자들은 한 가지만 사고자 했다. 바로 진리입니다. 잠언은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진리이신 예수님과 말씀 이외에는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에 관심이 많다면 그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옷, 즉 생활방식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관심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허영의 시장을 통과하면서 순례자 크리스천은 줄 곧 이렇게 기도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7) 지금 우리의 기도도 그래야 한다.
– 이동원 목사, 『영성의 길』에서 요약

교회와 사역

교회의 목적
선교해서 미숙해지는 교회
1977년 가을 신학교 졸업반 때 친구 몇 명과 함께 수유리에 있는 영락 기도원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한경직 목사님이 친필로 쓰신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기도원 입구에 있는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같이 “그 할아버지, 꿈도 크시네.”하며 웃었다. 5천만이라는 숫자가 황당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의 관심은 교회 성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교회 성숙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숫자를 언급하는 것을 조금은 경시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훗날 직접 목회를 하면서 한 목사님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의 진정한 관심은 교회의 성숙보다는 한 영혼의 구원에 먼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숙한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언제나 미숙해야만 한다. 역설적이지만 미숙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다. 미숙한 교회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오래 예수를 믿은 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얕은 물가에서만 첨벙거리기 때문에 미숙해진 교회가 있다. 또 하나는 교회 안에 이미 성숙한 교인들이 포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도해서 아직 신앙적으로 미숙한 교인들을 끊임없이 교회에 새로 영입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교회 수준이 떨어져 미숙해지는 경우다.

이렇게 본다면 성숙한 교회란 어쩌면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첫째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하고, 둘째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존재하는 곳이라면 교회는 끊임없이 선교해야만 한다. 교회의 목적은 선교에 있다. 그러므로 그 교회가 선교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그 교회가 성숙하고 알찬 교회라 할지라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성숙한 교회 만을 목표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자칫 사탄의 시험이 되기 쉽다. (안주하며 이뤄진 것에 만족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성숙한 교회 만을 목표로 삼지 말고 선교함으로써 늘 미숙한 교회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선교해야만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만 한다. 여러 수단과 방법을 통해 선교에 힘써야 한다.
– 김동호 목사, 『크리스챤 베이직』 중에서

오늘의 찬양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 Here I am to worship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추사 내 눈 보게 하소서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시고 참 소망이 되시네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우신 주

만유의 주 높임을 받으소서 영광중에 계신주
겸손하게 이 땅에 임하신주 높여 찬양 하리라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우신 주

다 알 수 없네 주의 은혜 내 죄 위한 주 십자가
다 알 수 없네 주의 은혜 내 죄 위한 주 십자가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우신 주
————————–
예배 찬양 리더로 사역하는 Tim Hughes는 빌립보서 2장에 큰 은혜를 받아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시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고백한다. 그런 마음으로 무릎 꿇고 경배할 때 떠오른 가사가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추사”였다. 당신은 그 희생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진정으로 영혼의 무릎을 꿇고 있는가? 당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며 오늘 이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찬양하는가?

>>>

삶과 신앙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나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겠다.”  결심 하나만 해보자!
성경을 즐길 때 같은 책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소그룹과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것만큼 유익한 습관도 없다.

첫째, 더 꾸준히 읽을 수 있다. 꾸준해 지려고 할 때 누군가 당신을 체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우선 순위에서 맨 위에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그리고…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어떤사람들의습관처럼,우리는모이기를그만하지말고,서로격려하여그날이가까워오는것을볼수록, 더욱힘써모입시다.” 히 10:23-25 새번역) 우리는서로가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산만해지기 쉽다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적 동기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아신다. 읽겠다고누군가에게말하면(그리고읽은것을 나눌 시간을정하면)더꾸준해지는데도움이된다.

둘째, 성경 읽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짝꿍을 맺으면 어떤 활동이든 훨씬 재미있다. 많은 경우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도 친구를 통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성경 읽기 친구를 두면 더 재미있다. 친구가 신나면 당신도 덩달아 신날 가능성이 높다. 친구가 자신에게 도전이 되었던 일을 얘기하면 당신은 그 진리를 어떻게 적용할지 궁리한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늘 혼자 읽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이 읽은 것에 대해 함께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셋째, 자신이 놓친 것들을 보게 된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잡을 수는 없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혼자 두면,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도 무뎌진다. 최대한 날카로워지려면 서로가 필요하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단락에서 다양한 부분이나 진리나 적용을 숱하게 찾아내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란다. 나는 같은 단락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때마다 새로 얻어야 할 게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는 내가 완전히 놓친 것을 찾아낸다. 매주 만나는 소그룹에서도 대화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내놓는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드러내신 것을 나눌 때, 모두 용기를 얻고 도전을 받으며 배운다. 각자에게 말씀을 향한 사랑이 계속 자란다.

넷째, 생각이 분명해진다. 당신의 머릿속에 머무는 생각들은 흐릿하다. 그것이 마음을 거쳐 입 밖으로 나오면 달라진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에 틀린 구석이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때론 마음에 자리했던 확신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훨씬 강해진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해 오신 말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큰 가치가 있다. 각자 따로 읽고, 모여서는 읽은 것을 서로 나누어라. 몇 주가 지나면 각자가 찾아낸 큰 주제들을 두고 얘기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범위를 좁혀가라. 한 장, 한 이야기, 심지어 한 구절을 두고 얘기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예측컨대, 당신은 성경을 더 많이 즐기고 다음 모임을 고대하게 될 것이다.
-케이스 페린 『성경을 즐겁게 읽는 10가지 방법』

교회와 사역

교회의 목적
제일 가는 목적은 예배 (2)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는 아니다. 예배를 영어로는 ‘service’라고 한다. 그야말로 예배란 하나님께 ‘service’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서비스한다는 것을 나는 다른 말로 ‘주를 기쁘시게 함’이라고 풀이하고 싶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드려지는 정규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교회생활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교회와 교인들의 삶의 목적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이 중요하고도 분명한 목적을 잊지 않을 때 교회는 늘 건강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예배다. 우리는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가 형식적이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생활하면서 주를 기쁘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와 교인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형제처럼 연합하고 동거하라
교회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가 ‘성도의 교제’이다.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는 것보다 부모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한 형제처럼 연합하고 동거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신다. (시편 133편 1-3절)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에 바로 이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었다. 이런 점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의 매우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와 선교, 교육과 구제 및 봉사와 함께 건전한 성도의 교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지금과 같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성도 간의 교제가 아름다운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 김동호 목사, 『크리스챤 베이직』 중에서

>>>

삶과 신앙

새해 당신의 결심은 무엇인가?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다 .” 이 결심 하나만 해보자!

새벽을 스마트폰 검색이나 TV 뉴스를 보면서 시작한 사람과 새벽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시작한 사람의 하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새벽에 기도로 시작한 사람은 최고의 과외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교제한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떤 충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내공이 쌓여 내면세계가 단단해졌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이겨낼 수 있다. 즉, 하루 시작 전, 반드시 성경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승리한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과 지혜로 일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남보다 더 탁월하게, 더 담대하고 평안하게 해낼 수 있다.

나는 새벽기도 전통이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 다시금 새롭게 회복해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믿는다. 의무감과 매너리즘으로 하지 말고, 피곤하지만 남의 눈치 보면서 짜증 내면서 하지 말고, 내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축복의 길이라고 믿고 기쁘게 해보자.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올해부터는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결심을 하는데, 다 작심삼일로 끝나기 쉽다. 우리가 딱 하나만 결심하면 좋겠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다. 이 결심 하나만 해보자.

기도가 뚫리면 하나님께서 항상 내게 말씀하실 수 있는 하이웨이가 뚫리는 것이며, 그러면 다른 모든 문제들은 즉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가 막히면 어떤 결심을 해도 안 된다.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격을 바꾸시고, 인생을 바꾸시고, 인생을 보는 눈을 바꾸시고, 부서진 관계들을 회복하시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황을 바꾸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줄로 믿는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고 그 길로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 한홍 목사,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

기도하는 한 해…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한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비전이 되는 한 해.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의 인격이 되는 한 해.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는 한 해.
그래서 갑절의 영성으로 신앙이 성숙하고 교회가 은혜로 성장하는 한 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교회와 사역

교회의 목적..사교클럽과는 달라야지(1)
푯대가 없는 사람은 경주할 수 없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의 삶은 결국 방황과 방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끝까지 훌륭하고 아름답게 완수하려면 무엇보다 그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탄이 주(主)의 몸된 교회를 변질시켜 약하게 만들려고 할 때 주로 쓰는 수단이 바로 교회의 목적을 잊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교회, 목적이 변질된 교회는 더 이상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없고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교회는 이와 같은 사탄의 전략에 휘말려 교회답지 못한 교회로 전락해가기도 한다.

우리는 교회가 늘 하나님< 앞에 반듯하고 아름답게 서도록,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목적이 분명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제일가는 목적은 예배

교회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다. 신학적 편의상 교회를 유형의 교회와 무형의 교회로 나눈다. 유형의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당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무형의 교회는 그 교회당을 중심으로 모인 교인들의 모임(시공을 초월한 우주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의 교회를 건축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형의 교회를 쉽게 예배당(禮拜堂)이라고 부른다. ‘예배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물론 무형의 교회의 목적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당연히 예배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언제나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예배는 진정 살아 있는 예배가 된다. 우리의 예배가 살아 있는 예배가 될 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 단연 힘써야 할 부분도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다. 교회는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한다. 예배가 타성에 젖어 있거나 경직된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다.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없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를 보라. 그 교회에는 공통적으로 예배가 살아 있다.

예배에는 기쁨이 있다. 예배에는 은혜가 있다. 예배에는 감동과 감격이 있다. 그것을 모르고 영적 불감증에 걸린 채 평생 교회 뜰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평생 은혜의 깊은 물을 체험하지 못하고 얕은 물가에서만 첨벙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자를 찾고 계신다. 요즘 당신의 예배는 어떤가? 요즘 교회의 예배는 어떤가?
– 김동호 목사, 『크리스챤 베이직』 중에서

*새해를 맞아 우리 신앙의 베이직을 새로 다져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한 일환으로 교회와 사역에 대한 글들을 소개합니다.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삶과 믿음>

top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