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3 삶과 믿음 모음
>>> 신앙 묵상 (1월 8일 2023)
영적인 성장을 위해,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신령한 음식을 사모하게 되어 있다. 크리스천이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
반드시 배워야 할 기독교 기본 교리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서 공부할 때는 자신의 영적 수준과 단계에 합당한 공부를 해야 한다. 교회에 출석하지만, 아직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은 자들은 먼저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배워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신자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피상적인 지식에 벗어나기 위해서 복음과 관련된 교리를 공부해야 한다.
복음과 관련된 교리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고난이나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이 흔들려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확고한 신앙을 위해서는 교리와 성경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단한 음식을 먹는 신앙 단계
크리스천이라면 결코 영적인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들은 영적으로 최소한 청년이나 아비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영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수단은 딱딱한 말씀을 먹는 것이다.
이렇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도록 계속해서 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여해야 한다. 단단한 음식을 먹는 수준이란, 성경의 주요 가르침에 대해 체계를 세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다.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교회에서 제공하는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등 꾸준히 성경을 배워나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주님께 갈 때까지 계속해야 할 일이다.
[점검질문]
1.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를 항상 인식하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영적 갈증이 있습니까?
3.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4. 성경의 주요 교리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5. 영적으로 단단한 음식을 소화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까?
>>> 신앙 묵상 (1월 15일 2023)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에게는 하나님 외에 답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답을 얻는다. 자신의 능력을 답으로 삼는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은 오답이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진리이시다.
때로 돈 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인기 많은 사람이 인기 때문에, 인맥을 중요시하는 자가 사람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답이라 여겼던 것이 오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는데 하나님‘도’ 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런 기도는 사실 하나님을 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 기도는 간절함이 사라져버린 기도이다.
많은 사람이 ‘기도나 해볼까? 기도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기도를 포기해버린다. 바빠서가 아니다. 게을러서도 아니다. ‘기도 외에는 길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사라진 것은 하나님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가 절박하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 외에 기댈 구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의 금요철야 예배에는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있다. 가정에서 포기한 사람, 병원에서 안 된다고 한 사람, 사업하다가 부도난 사람,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기에 금요철야 예배는 하나님 한 분만 남은 사람들의 예배이다.
이 예배에 달려오는 성도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가장 많이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라는 말이었다. 하나님만 답으로 남은 사람들의 기도는 다르다. 더러운 바닥도 상관하지 않고 무릎을 꿇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의식하지 않는다.
“주여~~!”라고 창자가 끊어질 만큼 간절하고 처절하게 하나님을 부른다.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다. 시간도 보지 않는다. 밤 깊도록 새벽이 이르도록 하나님께 나아간다. 이유는 딱 하나이다.
하나님만 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요철야 예배에는 지금도 수많은 간증이 쏟아진다. 요즘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하나님이 답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한 명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무능한 죄인이라는 것이 인정되는가. 내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나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한다. 그때 하나님만이 답이 되고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며 응답이 시작된다.
때로는 하나님이 갈멜산에 나 혼자만 남기실 때가 있다. 인생 가운데 하나님만을 답으로 남기실 때가 있다. 건강 앞에 손을 들게 될 때가 있고,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갈 때가 있다. 내게 있는 능력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도록 비참해질 때가 있고, 재정적으로 빈털터리가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답이 되시는 때,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이 답이 되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업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늘 문이 열리는 간절함의 기도를 시작하라.
— 이현우, 『기도를 멈추지 말고』 —
추기 기도 제목
–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가정과 경제적 회복을 위해
>>> 신앙 묵상 (1월 22일 2023)
좋은 사람을 알아 보는 안목을 주십시오
사랑하는 주님,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주님, 그 복을 제게 허락해주시옵소서.
만날수록 서로 더욱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사람. 함께 있으면 대화가 통하고 마음이 하나 되는 사람. 헤어질 때면 아쉽고, 또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다윗에게는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친구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무명이었던 그가 사무엘을 만난 후 그 인생이 달라졌고, 위기의 순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삶을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주님, 제게도 이런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사람을 존중하고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제 인생의 적재적소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이제 되는 대로 아무나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힘을 얻고,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넘치는 그런 만남을 선택하겠습니다.
주님, 바울에게 믿음 안에서 만난 영적인 아들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제게도 영적인 제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제 삶을 아낌없이 나누고 그가 누구보다 잘되기를 바랄 수 있는 제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말이 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의 비전을 응원해줄 수 있는 친구.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을 때,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사랑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친구.
바울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던 것처럼, 제게도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제게 일어난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여기며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낙심될 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격려해주는 동역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 믿음이 더 좋아지고, 때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런 동역자를 만나는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압니다. 예배가 살아있고 말씀과 기도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 사랑 안에서 하나 되고, 마음을 다해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영혼을 살리는 데 힘쓰는 좋은 교회를 만나는 축복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제가 사람들의 연약한 부분을 볼 때 지나치게 확대해서 보지 않게 하시고, 사람들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그들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해주시옵소서.
상대방이 가진 것을 좋게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시고, 사람들의 장점을 알아주고 강점을 부각시켜 줄 지혜를 주시옵소서. 사람들을 대할 때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서둘러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주시고, 갈등이 있을 때는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겸손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인생의 만남 중에서 가장 놀라운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어찌 이 힘든 인생을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제 삶에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의 기도에 응답이 되는 사람이길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만남을 허락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장재기, 『따라 하는 기도2』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분노, 증오, 실망, 두려움, 욕심, 슬픔
수많은 감정들이 내 마음 속에서 요동칠 때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평안을 주시옵소서.
평안을 주시옵소서.
>>> 신앙 묵상 (1월 29일 2023)
죄의 유혹 앞에 나는…
죄와 관련해서 실천해야 할 것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싸우는 게 아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롬 6:12,13
죄와 싸우라는 내용의 말씀을 하면서 세 번에 걸친 부정적인 명령어가 나온다.
‘못하게 하여.’
‘순종하지 말고.’
‘내주지 말고.’
이렇게 삼중으로 명령하며 강조하는 것은, 이중 삼중으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 번에 넘어갈 수 있는 게 죄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라. 성도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목사가 성적인 문제로 한순간에 넘어지는 일들이 잊을만 하면 터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신뢰받던 목회자가 금전 문제에 연루되어 부끄러운 자리에 빠지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우리가 큐티를 왜 하는가?
말씀은 왜 읽는가?
나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려고 묵상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잘못을 저질러 부끄러운 자리에 빠진 어떤 사람을 놓고 그 사람을 정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 사건을 두려운 마음으로 나의 기도제목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 히 12:4
당시 로마의 검투사들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웠다. 피 흘릴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죄와 싸우되 어느 정도의 각오로 싸워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죄의 유혹에 넘어지면 나는 망한다. 나는 죽는다. 내 영혼은 끝장이다.’
이런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피 흘리기까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 안으로 세속화가 물밀듯 밀려와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넘어뜨리는 현실 앞에서 우리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저항하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조금 해보고 ‘안 된다. 다른 사람도 다 죄짓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라고 하면 안 된다.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한다.
여기에 대조되는 두 인물이 바울과 삼손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울은 그 사명을 잘 감당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삼손은 그 사명을 잊어버린 부끄러운 인물의 상징이다.
바울이 임종을 앞두고 자기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딤후 4:7
피 흘리기까지 싸웠다는 것 아닌가? 피 흘리기까지 마땅히 지켜야 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쳐왔다는 이야기 아닌가?
여기에 반해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라는 특별한 사명과 목적을 가진 존재로 부름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죄에 대해 민감함이 없어서 넘어져 버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울처럼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 아무리 세상이 세속화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해도 바울처럼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로 믿는다.
우리가 삼손처럼 두 눈이 뽑히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비참하고 초라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바울처럼 당당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빌립보서 2장 12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의 눈물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빌 2:12
예수를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죄인으로 서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주님 앞에만 서면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원합니다’라는 그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 이찬수, 『오늘, 새롭게 살 수 있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