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3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9월 17일 2023)

기도하려고하면 제 마음이 자꾸 걱정에 붙들려 버립니다
애쓰지 말라

하루를 살다 보면 주변의 아픈 사람들 얼굴이 자주 떠오릅니다. 동시에 제 마음은 그들에 대한 걱정에 붙들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모든 일을 기도로 갖고 가기로 결정한 터라, 누군가 떠오를 때마다
그에 대한 걱정 대신 한 마디의 기도를 쏘아 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배경에 하나님을 두고 그분께 모든 걸 의뢰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습관을 들이면서부터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 (탄식, 염려, 불안) 이 사라지고 평안이 지속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저는 혼자 살던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살면서부터 제 영혼은 고통에 짓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성향상, 고통 중에 처한 이들이 떠오르면 그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조급함에 휩싸이곤 했는데 이제 그 눌림으로부터 자유해진 듯합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에 반응하면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네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너는 그저 나와 교제 하면 된단다. 나랑 같이 인생의 동산을 거닐자꾸나.’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이 음성의 구체적인 의미를 저는 오늘 읽은 책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요함에 이르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하는 것이다. 나는 고요함에 이르려고 몸부림치거나 나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꽉 쥐고 있던 것을 그냥 놓는 것이며, 마음을 편히 갖는 것이며, 애쓰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고요함에 이르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 마크&패티 버클러, <하나님과 대화하기>, 배응준 역(규장, 2018), p.86 —

이 책에서 말한 대로, 하루라는 시간 동안 모든 초점을 ‘나’ 아닌 ‘하나님’께 두고 그분과 교제 (기도) 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걸 발견합니다. 평안 중에 주님과 동산을 거닐며 하루라는 시간을 즐기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역과 섬김, 영적 사명의 능력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속에서 흘러나와 자연스레 해결됩니다. 내가 주님과 하나가 될 때 내가 아닌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모든 것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제 인생이 그렇게 쭉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위적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도, 습관처럼 애쓰고 힘쓰던 모습도 내려놓고, 그저 주님과 이 하루의 동산을 거닐며 항상 기도하고, 맛있게 식사도 하고, 주님 인도하시는 대로 성실하게,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는 자연스러운 (인위적이지 않은)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한근영 —

>>> 삶과 신앙 (9월 10일 2023)

“주님께는 Yes, 악에게는 No”
2019. 11. 21. 목
주님께는 Yes, 악에게는 No

겨울은 확실히 힘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는 계절입니다. 몸 아픈 사람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더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함이 더욱 실감 날 수밖에 없는 시간이지요.

오늘 장을 보다가, 돈 걱정 없이 싱싱한 식재료 사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맛있는 밥 차려주고, 따뜻하고 예쁜 외투들을 사다가 “이거 선물~” 하고 건네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나이 오십 넘어서까지 늘 빈약한 제 주머니 사정에 오늘은 조금 쓸쓸했습니다. 추워하는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 몇몇이 자꾸만 생각나는 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밤에 QT 책을 자꾸 뒤적거렸습니다. 아침에 QT 하면서 영적 도전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뭐였더라? 뭔가 정신이 번쩍 났었는데?’

책을 펼쳐보니 오늘부터 시작되는 요한계시록 말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부분이었습니다.

’내 백성은 반드시 승리하리라’

이 제목에서부터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며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밑줄을 그으며 동의했던 부분은 요한계시록의 세 가지 저술 의도 중 “둘째, 교회로 하여금 저항 공동체로 살아갈 것을 독려하기 위함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선하신 주님께는 항상 “Yes”라고 답하지만, 악한 존재와 사상과 생각에 대해서는 “No”라고 저항할 줄 알아야 함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선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어도 악한 것에 대한 저항이 없다면 진정한 승리는 얻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저항해야 할 ‘악’은 무엇일까요?

단연코 ‘물질주의’입니다. 물질의 유무로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제 삶의 가치가 평가되는 것도 아닌데,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삶을 평가하는 악의 소리에 저항하지 못한 채 기가 팍 죽어버리는 오늘과 같은 모습이지요.

오늘 다시 읽은 <래디컬> (데이비드 플랫, 두란노)도 교회가 물질주의에 정면으로 저항해야 함을 알려줬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하므로, 교회 안에 재능 있는 사람이 없고 재정이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해도, 누군가 성령님의 권능에 사로잡힌다면 그 교회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그와 같은 성령님의 능력에 기댈 수 있다면 단 한 달 만에라도, 백 년 동안 인간의 힘으로 쌓아 올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곱씹다 보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정리되어 또 한 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추워지기 때문에 마음 약해지는 이 계절, 오직 주님의 말씀 안에만 거하고, 악에 대해서는 분연히 저항하
는 용사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넘어지게 하려는 나쁜 생각들은 썩 꺼져라!”라고 저항하며 일어서지 않는다면 이 계절, 승리는 커녕 또 한 번 나자빠질 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찬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에 주님은 또 한 번 저를 용사로 불러주셨습니다. 부디 제가 주님께는 “Yes”, 악에 대해서는 “No”라고 말하는 멋진 용사가 되도록 붙들어주시길 기도합니다.
 —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한근영 —

>>> 삶과 신앙 (9월 3일 2023)

하나님의 임재를 가로막는 6가지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미소 짓는 얼굴은 언제나 당신을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분과 아름다운 관계를 즐기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미소 짓는 하나님의 얼굴과 우리 사이에 ‘차단하는 가림막’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1. 고집 그중 하나는 고집이다. 당신이 교회에 들어가거나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갈 때도 고집은 당신과 함께 들어갈 수 있다. 고집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집스런 사람은 방해 받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있으면 온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의 길이 막히면 불평하며 나쁜 성질을 드러낸다.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도 신령함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하나님께 굴복하는 삶을 사는가?

2. 야망 또 하나의 가림막은 야망이다. 심지어 종교적 야망도 가림막이 된다. 사람들은 종교의 영역에서도 무엇을 얻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힐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럴 때 생기는 결과물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가림막 뿐이다.

이와 같은 경우가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한 사건을 기록한 여호수아서 7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취지로 말씀하셨다.

“거기서 네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배를 땅에 댄다고 해서 내가 은혜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일어나 네 상황을 올바로 정리하고 가림막을 찢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이다.”

우리의 야망을 버리지 않은 채 기도로 가림막을 찢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3. 두려움 또 다른 가림막은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 하든 간에 두려움은 언제나 불신앙의 자녀다. 암에 걸리는 것 아닌가, 자녀가 아프지 않을까, 직업을 잃지 않을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 어떤 두려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불신앙의 자녀다.

4. 자기사랑 또 다른 가림막은 자기사랑이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기사랑에 빠지면 자기 위에 있는 ‘차단하는 가림막’을 걷어낼 수 없다.

자기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처럼 고통을 준다. 이와 유사한 자기중심적 죄들로는 자기확장과 자아도취가 있다.

5. 돈 또 다른 가림막은 돈이다. 돈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서 정말로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자와 하나님 사이에 10달러가 놓이게 된다 해도, 그 단돈 10달러가 그와 하나님 사
이를 가로막을 수 있다.

6. 사람들 또 다른 가림막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늘 두려움의 가림막 아래에서 살고 있다.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당신의 목표라면 가림막이
당신의 마음을 덮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또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친구, 지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아마 제일 힘든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림막 반대편에서 여전히 미소 지으며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의 발 아래에 두어야 할 것은 돈, 사람, 친구, 지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두려움,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 야망, 교만, 완고함, 고집, 그리고 성령께서 지적하실 수도 있는 당신 삶의 어떤 부분들이다.
— 하나님 임재에 압도되다, A.W.토저 —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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