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2018 지금 나의 믿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말씀 선포: 김성배 목사

말씀개요: 요한복음 11:17-46 / 지금 나의 믿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을 만난 마르다는 어떤 하소연을 합니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무엇이라 답합니까?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을 막아선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르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말씀요약: 요한복음11:17-46 / 지금 나의 믿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마르다는 예수께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가 다시 살아날 줄을 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조문 인사 정도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은 마르다의 믿음을 끌어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마르다가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이 때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기에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난다고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방금 전에 한 고백에도 마르다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지금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다시 말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텐데, 왜 아직도 믿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분명 마르다는 믿는다고 말을 하였는데, 실제로 그녀는 아직까지 제대로 믿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큼, 실제로는 믿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다의 한계였습니다. 마르다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르다의 믿음은 그저 피상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모르는 사람과 비교하여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는 마르다가 믿음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눈을 변화시켜 믿음의 눈을 갖게 합니다. 우리의 귀를 변화시켜 믿음의 귀를 갖게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변화시켜 믿음의 입술을 갖게 합니다. 믿음은 절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제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과 세상의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귀로 말씀을 듣게 됩니다. 믿음을 입술로 표현하게 됩니다. 때로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성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믿음은 우리의 인격을 지배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합시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장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피상적인 믿음에 불과합니까? 혹시라도 아직까지 믿음이 삶 전체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그 믿음이 우리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