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2018 십자가의 도

말씀 선포: 김성배 목사

말씀개요: 고린도전서 1:18-25 / 십자가의 도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왜 거리끼는 것이었습니까?
헬라인들은 왜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여겼습니까?
나에게 십자가는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말씀요약: 고린도전서 1:18-25 / 십자가의 도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똑같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시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대인과 헬라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거리끼는 것으로 여겼고, 헬라인들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의 경우, 중요한 것은 표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 시대부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적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또한 이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더 많은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표적과 함께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불리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승리자로 오셔야 할 메시야가 패배자가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왕으로 군림하셔야 할 메시야가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 stumbling block이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를 걸림돌정도로 생각하니 당연히 멀리하고 꺼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헬라인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적 지혜 속에서 만물의 근원을 캐며,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만을 구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지혜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비판하며 거부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로 볼 때, 십자가의 도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유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의 죽음이 자신들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인간의 이성만으로 따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고난이 나를 대신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살리기 위한 죽음이었다는 것은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헬라인들은 이런 이유에서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지혜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거리끼는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십자가를 우리는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십자가를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떻게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되셨습니까? 기적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기적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이제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이전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알았다면, 십자가의 지혜를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육체의 연약함일 수도 있습니다. 평생 보살펴야 할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맡겨주신 이 섬김의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가볍든 무겁든, 쉽든 어렵든,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하지 말고 묵묵히 지고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승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