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개요 출애굽기 10:7-28 / 결코 타협이 아닌, 온전한 순종으로
여덟째 메뚜기 아홉째 흑암의 재앙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지키려는 바로는
타협과 협상을 시도한다.
하지만, 한 걸음 씩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모세와 아론은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
쫓겨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신다.
바로와 이집트가 항복하도록 역사하신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은혜와 긍휼을 간구하자.
말씀요약 출애굽기 10:7-28 / 결코 타협이 아닌, 온전한 순종으로
사람이나 민족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있을 때, 협상은 그 피해를 줄인다. 하나님을 대항하던 바로 역시 하나님과 협상을 시도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싸워 승리할 수 없고, 전지하신 하나님과 흥정하여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과 흥정하려할 때가 있다. 여덟 번째 메뚜기와 아홉 번째 흑암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풍부한 수자원과 삼각주의 높은 생산력은 이집트를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몰려던 곤충 떼는 한 해 농사를 흉작으로 만들었다. 이런 곤충재앙으로부터 보리, 밀과 나맥 같은 곡식을 “세라피아”가 지켜주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신은 하나님의 권능, 메뚜기 재앙 앞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집트와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 했다. 신하들이 이집트가 이미 망했다고 할 정도였다. 바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면서, 재앙도 피할 수 있도록 협상하려한다. 가족에 이어 가축을 볼모로 잡아두려는 바로의 요구가 받아드려지지 않자, 협상은 결렬된다. 모세와 아론은 쫓겨난다.
더 심각한 위기, 9번째 흑암의 재앙이 찾아온다. 이집트와 바로도 태양을 신으로 섬겼다. 동식물의 활동과 성장에 필요한 태양신 “라”은 하나님의 심판, 흑암의 재앙을 막지 못한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었을 때, 캄캄한 흑암이 온 이집트를 삼일 동안 덮었다. 서로를 인식할 수 없어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23절). 하나님이 이집트의 우상들을 심판하시자, 바로는 타협을 다시 시도한다. 바로는 모세에게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 수 있다고 한 발 더 물러섰다.
바로는 파리 떼 재앙 후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에서 제사를 허락했다. 일곱 째 우박의 재앙 후, 바로는 어른 남자들만 광야로 나가서 제사를 드리도록 양보했다. 그리고 가축들은 두고, 사람들만 광야로 나가서 제사들 드리도록 한 발 더 물러선다.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잡아두려는 시도였다. 노예의 노동력을 잃는 일은 큰 손실이다. 백번 양보해 남녀노소 모두가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니, 하나님도 이쯤에서 이집트를 그만 괴롭히도록 흥정했다.
끝까지 뭔가를 붙잡는 어리석은 모습, 마지막까지 타협하려는 미련한 마음이다. 이 만큼 양보를 했으니 하나님도 이 만큼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일 것이다. 물론 타협과 흥정은 사람사이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다. 휘지 않는 나무는 결국 부러지니, 유연성과 양보도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이런 원리는 통하지 않는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할 수 있다는 교만,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 앞에 하와와 아담은 굴복했다. 죽음과 죄, 파괴와 고통을 겪게 되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해결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자.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자.
바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의 권능도 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과 흥정하고 타협하려 한다. 생명과 평안의 길을 선택하지 못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 세상의 원리나 인본주의 교육을 뛰어넘어, 복음의 진리로 돌아가자.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간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