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9 삶과 믿음 모음

>>> 교회와 사역

내 문제와 필요 때문에 예수님은 뒷전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2,3)

1.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결과에 대한 책임의 크기로 문제를 정의하고 싶어 한다. 즉, 누구 때문인가를 따져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정의하면 문제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다른 답변을 하신다. 누구의 원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는 것이 이유라고 하신다. 우리의 익숙한 방법을 따르자면 이런 현실인식은 조금 상황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전적으로 우리의 현실인식 안에 예수님의 인식이 들어있지 않아서다. 우리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지 말고, 예수님의 정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제자들의 상황인식은 분명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근거 없는 원인을 추측해 누군가를 정죄할 가망이 높다.

내 삶에 일어난 문제를 예수님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지를 알고자 하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늘 필요하다. 그것은 효과적인 문제해결과 직결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문제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결론짓는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해로운가’에 따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2. 문제정의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정의하는 기준은 ‘나의 이익’에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나의 이익을 위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기준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알고 분석하는 원인과 결과는 제한적이고, 무엇보다 나의 이익을 위한 본성에 충실함으로 늘 하나님의 뜻과 멀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사로가 죽은 것은 예수님께서 늦게 오신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믿게 하시려는 이유로 일어난 일이었다.

문제를 정의하는 기준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나타내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문제가 정의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심과 통치하심의 내용이 문제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원하시고, 영광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문제 정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순종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은 문제에 대한 정의와 해결책에 대해 순종하는 이들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많은 경우 문제는 그대로 있고 다툼과 정죄만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일하심은 더디게 올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런 일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3. 예수님의 제자로 섬기는 교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종교를 찾고, 교회도 사람들의 생각에서 예외는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사람들 안에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필요가 아니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교회도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필요가 있다. 사역자들은 의미 있게 사역을 하고 싶고, 사역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럴 때 행복하다. 성도들은 삶의 필요에 대해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이 필요하다. 그 필요가 채워질 때 안심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에 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관계가 형성되고, 필요를 해결하는 쪽으로 움직이던 관계는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역이 주어지지 않거나 잘 안 되거나 삶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거나 문제해결이 잘 안될 때 무시무시함을 느낀다. 순식간에 절대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어려움은 늘 쉽지 않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향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있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문제정의를 할 수 있는 개인적 역량이 준비되고,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의 관점을 교정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 김길 목사, 『제자도』중 –

오늘의 찬양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그 거룩한 하나님 성에서
찬양할지어다.
주 승리 우리에게 주셨도다.
모든 원수 물리치셨네.
엎드려 절하세. 우리 주님께~

(반복) 다 주의 크신 이름 높이며,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 감사하세.
오 주의 신실하신 그 사랑
온 땅과 하늘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
예상치 않은 문제들과 좌절. 그저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뎌진 나의 영성. 이 찬양의 노랫말처럼 광대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바라보고 신앙의 자세를 바로잡자. ‘위대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소서!’라고 간절히 구하자.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갈림길에서 어쩔 줄 모를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신실하신 사랑을 매일 삶으로 선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시 내 신앙의 처음, 주님을 처음 알고 감격하고 기뻤을 때의 사랑을 회복하고 살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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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찬양

날 세우시네 / 원곡: You raise me up
나 지치고 내 영혼 연약할 때
근심 속에 내 마음 무거워
주 오셔서 함께 하실 때까지
나 잠잠히 주님을 기다려

날 세우사 저 산에 우뚝 서리
날 세우사 풍랑 가운데도
함께 하심 나 강하게 하네
날 세우사 모든 것 할 수 있네

열망 없는 그런 삶은 없으리
끊임없이 고동치는 가슴
주 오셔서 경이로 날 채우고
영원한 삶 나에게 주시네

날 세우사 저 산에 우뚝 서리
날 세우사 풍랑 가운데도
함께 하심 나 강하게 하네
오 날 세우사 모든 것 할 수 있네

날 세우사
모든 것 할 수 있네
날 세우사

아일랜드의 민요를 기초로 만들어진 이 곡은 한국에서 찬양의 가사로  새롭게 변화해 한국컨티넬탈 싱어즈나 소향 등이 부르며 교회에 널리 알려졌다. 지친 삶을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하며 부르자.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지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에 빠진 우리가 새로와 질 수 있다. 소망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신명기 31:6)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5~7)

>>> 교회와 사역

섬김의 교회 미래 3년: 2019년 8월 – 2022년 7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6-7

앞으로 3년간의 목회와 사역에 관한 문의가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7년째 해는 안식년이었습니다. 설립 후 7번째 해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2021년 8월초부터 2022년 7월말까지는 섬김의 교회의 안식년이 됩니다. 따라서, 2021년 8월초부터 2022년 1월말까지는 설립 후 6년 6개월 동안 이루어진 섬김과 헌신, 즉 사역의 열매를 수확하는 6개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와 사역, 성도와 가정, 범사와 생업에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2022년 2월초부터 7월말까지는 이 모든 영역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기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역과 삶의 은혜와 축복을 찬양과 기도, 말씀과 헌신, 사역과 섬김으로 나누는 기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와 회복을 통한 안식의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2020년 7월말까지는 섬김의 교회의 사역과 각 지체들의 삶이 주 예수님 안에 더 견고히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더 깊게, 더 넓게 뿌리를 내리는 남은 다섯 번째 해의 사역이 되어야합니다. 교회 사역과 모든 삶에서 믿음의 뿌리, 사랑의 뿌리, 섬김의 뿌리, 특히 예배의 뿌리를 내려야겠습니다.

섬기의 교회가 더 견고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중장기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역할 수 있는 공간과 장소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더 견고한 뿌리를 내리면, 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주 예수님을 본받아, 즉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는 성장해야 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먼저, 기도에 힘써 주십시오. 교회와 교우들이 더 견고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의 영성생활과 공동체의 예배를 통해 더 깊은 믿음으로, 또한 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자녀들이 견고한 신앙의 기초를 다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의 신앙성장과 교회생활을 도울 전임 교육사역자의 청빙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교육 전임사역자의 사역이 펼쳐질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합니다. 자녀들이 찬양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예배/찬양팀을 조직하는 비전을 붇들고 기도와 후원을 부탁합니다.

또한,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인도하는 ‘양육팀’이 만들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많은 이가 사역 인도자로, 말씀/찬양 등의 사역 리더로 준비 될 수 있도록 교회와 성도가 섬깁시다. 이런 다양한 섬김들이 은혜롭고 능력있게 펼쳐지도록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당부합니다. 남은 다섯째 해, 2020년 7월말까지는 더 견고히 뿌리를 내리도록 사역합시다. 그리하여 여섯째 해는 더 견실히 성장하도록 사역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 예수님 안에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여 안식년의 전반기에는 참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2022년 2월초부터 7월말까지는 치유/회복/나눔의 은혜를 공동체 안과 밖,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나누는 축복의 안식의 기간이 되도록 함께 달려갑시다.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헌신하시고 섬겨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이런 비전을 향해 ‘또 다시 하나님께 함께’ 갑시다.
– 김성배 목사 –

>>> 삶과 신앙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기도들

손양원 목사의 기도
인생은 과거 잘한 것에 교만해지기 쉽고 실패에 낙심키 쉬우며 미래로 미루다 일평생 속아 삽니다.

오늘만이 내 날이요 주님 만날 준비 생활도 오늘뿐이다. 어디서, 무엇 가지고, 무엇 하다가 주님 만날 것인가?

기도, 성경 읽기 등한히 하고 책임을 게을리하다가 주를 만날까 두렵습니다.
오늘에 만족하게 살고 준비고 어둔 밤 되기 전에 준비하게 하소서.

주기철 목사의 기도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옵소서.

주님은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저를 위해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모르는 체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무덤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여! 저도 부활을 받고 사망의 권세를 제 발 아래에 밟게 하시옵소서.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프랭크 루박의 기도
저는 매 순간 하나님을 제 생각 안에 모시는 일을 잘해내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 때마다 언제나 놀라울 정도로 지혜를 받지만
하나님을 망각할 때마다 언제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 모든 생각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것을 가르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생각들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하소서

스탠리 나우웬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께 많은 것을 받았는데도 단순히 주님의 임재 안에 조용히 머물기가 아직도 어렵습니다. 주님과 단둘이 있고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친히 친구들에게 보여주신 모습 그대로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저는 옆길로 벗어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립니다.

제 자신의 작고 시시한 보물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주님, 기다립니다. 고대합니다. 소망합니다. 주님의 성령 없이 저를 떠나지 마소서. 하나 되게 하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영을 제게 주소서

오늘의 찬양

주는 완전합니다 / 마커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 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요즘 이리 부딪히고 저리 쓰러지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십니까. 연약한 모습 때문에 어찌할 바 모르고 있습니까. 기도는 해야 하겠는데 어찌 기도할지 모르십니까.

이 찬양의 가사로 우리의 기도의 고백을 삼아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좌절하는 대신, 완전하신 주님께 삶의 초점을 맞취 나갑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안아서 회개합니다.” (욥기 42:5-6) 이런 욥의 고백을 묵상하며 우리 삶과 다른 사람을 장악하려는 꿈을 이제 주님이 흩어버리시기를 기도합시다. 완전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나를 다스리시는 비전을 갈망하며 전진할 때, 매일의 삶은 완전하신 주님의 은혜로 넘칩니다.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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