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19 삶과 믿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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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
자녀를 위한 기도에 관해서 /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질문: 목사님,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성적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녀들의 구원과 신앙성장을 위한 기도인데도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완벽히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가정은 기본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즉시 응답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이 교회에 더 잘 다니고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열매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드러나지 않게 벌써부터 역사하고 계십니다. 질벼의 치유 같은 경우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 회심해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간 편에서도 요구 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강제력을 사용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인간이 싫다고 자꾸 거역할수록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주 강한 욕구와 정욕, 어둠의 세력에 속박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움직이시기 위해 이런 속박이 하나 하나 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자녀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커지면서 불신앙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반감이 사라지고 불신앙과 불경스러운 모든 것에서 영혼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열매를 인간이 알아챌 수 있기까지는 하나님께서 많은 일을 하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어머니들은 기도를 올바로만 한다면 그 즉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준비작업이 마무리되는 데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자녀에게 닥치는 고난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군가 사랑으로 진심으로 꾸준히 기도하는 한 어느 누구도 버림받은 자로 여겨선 안 됩니다.
하지만 기도의 열매가 너무 없는 경우 기도하는 사람 편에 옳지 못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예배에 잘 참석하고 겉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걸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모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영적으로 결핍되어있고 하나님과 참 교제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않으면서 자녀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그런 사람의 기도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군가 기도하기 위해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기도가 완전히 응답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상황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는 매일 많은 말로 반복하는 것보다 잠잠히 마음에 품고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자신을 살피고 늘 주님과 동행하면서 기도하는 대상에게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경솔하지 말고 어리석은 언행을 삼가고, 가혹하거나 엄격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절함과 관용 없이 가르치려는 태도는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태도가 가족을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이 지금보다 더 빨리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실 때가 곧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직접 그분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족 때문에 상심하는 모든 영혼을 위로하고 인내와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영광스러운 결말로 이끄실 것입니다.
묵상 에세이
“코에 숨이 있는”(사 2:22) 우리 인생은 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쉼이나 휴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늘 하던 활동, 늘 하던 일과는 다른 활동, 다른 일을 할 경우 대개 휴식을 맛보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하거나 찬송을 부르고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우리의 삶에 커다란 휴식과 안식을 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목사에게는 일이 될 수 있는 것도 성도에게는 커다란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일 못지않게 쉼 자체도 우리 삶에 중요합니다. 일에 열중할 때 우리는 나 자신도, 타인도, 우리 주변도 잊어버리고 일 속에 빠져 일에만 몰두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다가 쉬어 보십시오. 천천히 산책을 하게 되면 길가의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친구를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 나는 타인과 함께 사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쉬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과 이웃을 생각하고 자연과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제대로 쉬게 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조건 쉬라고 가르칩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수 있으나 이레째는 쉬라고 합니다.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삶을 완전히 맡긴 사람만이 사실은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쉼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쉬되 그냥 쉬지만 말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예배드리면서 쉬는 것이 제대로 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쉬지 못하는 사람이나 쉼이 필요한 이웃도 생각하며 그들도 쉬게 하는 것, 그들과 함께 쉬는 것도 제대로 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휴식의 계절을 맞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쉽시다. 모든 것 내려놓고 쉽시다. 예배드리면서 쉬고, 남들과 함께 더불어 쉽시다.”
– 강영안 / Calvin Theological Seminary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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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역
방탄소년단 음악이 만든 ‘치유와 긍정’
인생에서 경험하는 여러 즐거움 중 리듬을 타고, 어깨를 흔들고, 온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가득 담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음악’입니다. 음악으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귀한 선물입니다.
예전에 아빠인 나에게도 딸아이들의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인기를 누리던 JYP소속의 ‘2PM’의 사인을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직접 JYP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 사인을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가끔은 대중가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듣기도 했습니다. 최근, 아이들을 통해 방탄소년단(BTS)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노래를 듣고 보면서 음악은 우주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라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2019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시상식과 BTS의 공연 장면과 BTS의 팬들인 아미(ARMY)들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어 가사로 떼창을 하고, 콘서트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를 몇 일 밤을 줄서서 세우는 진풍경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진정한 세계적인 보이그룹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미들의 인터뷰 내용 중 “BTS가 나를 살렸어요,” “BTS가 내 마음을 치료했어요,” “BTS는 긍정 메시지를 주어요.” 등등 음악 자체보다도 더 귀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TS의 노래는 인종과 국경을 넘어 전하는 ‘치유와 긍정메시지’였습니다. ‘음악’ 자체가 가진 힘에 긍정 가사를 붙여져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의 가사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작사가가 무려 9명이었는데, 높아지고 커져버린 삶보다 사소한 것이 특별할 수 있고, 거대한 태양보다 작은 ‘너’ 자체가 중요하다는 노래였습니다.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 가치를 알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속에도 음악 즉, 찬송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21). 물론, 여기서의 찬송은 음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이 만든 찬양을 시작으로 모든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찬송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 만든 ‘찬양’입니다.
시편 148편을 보면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반짝이는 별들이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하늘과 하늘 위에 있는 물, 즉 우주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의 왕들과 모든 민족들, 모든 지도자들과 통치자들, 젊은 남녀와 노인과 아이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주적인 찬양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음악’은 우주적인 언어입니다. 그리고 찬송의 중요성과 찬양을 불러야하는 우리의 사명을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찬송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음악입니다.
BTS를 통해 ‘음악의 힘’을 다시 바라봅니다. ‘음악’ 자체가 능력이기에 ‘음악치료’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방탄소년단 BTS의 음악을 통해 나타난 ‘치유와 긍정’메시지를 생각하며, BTS를 응원합니다. 또한 LOVE MYSELF 캠페인을 통해 MD 판매 수익금 전액을 유니세프를 통해 기부함으로서 전 세계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나관호 목사,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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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에세이
“철문 뒤의 자유”
전쟁만 하면 늘 승리하던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포로들에게 질문하곤 했습니다. 포로를 한 명씩 불러 거대한 철문 앞에 데려다 놓고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너에게는 지금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지금 내 손에서 총살당하는 것이고 하나는 저 거대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 철문은 너무나 거대하고 거칠고 무섭게 생겼습니다. 포로 중 99%는 철문 대신 총살형을 선택했습니다. 포로들은 거대한 문 뒤에 온갖 고문과 힘든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결국 죽음을 맞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장군은 “저 철문 뒤에는 자유가 있는데 사람들은 문을 열어보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도전하는 인생은 때로 두렵습니다. 하지만 철문을 열어보지 않는 한, 문 밖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보장에 매여 차선을 선택하려고 하는 한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보이는 거대한 철문은 무엇입니까. 어렵더라도 한번 그 문을 열고 나가보십시오.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 문을 열었을 때, 내가 꿈꿨던 자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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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역
느린 교회를 꿈꾸다 – 교회를 일구는 세 가지 원칙 (C.크리스토퍼 스미스) part 4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 말씀이 뭘 뜻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열쇠이다. 하지만 이 가르침을 오늘 실제의 삶에서 적용할 길을 찾기란 쉽지만은 않다.
공동체를 일구는 원칙 1 : 뿌리 내리기
공동체를 일구는 원칙 3 : 대화
공동체를 일구는 원칙 3 : 일과 안식 사이의 리듬
우리를 그리스도 안의 삶으로 깊이 이끄는 세 번째 원칙은 ‘일과 안식 사이의 리듬’ 찾기였다. 기술 중심의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불편과 노력을 최소화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그분을 닮기 원한다면 부지런히 일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일 걱정으로 소진되어서는 안 되겠다(마 6:25-33). 반대로 끊임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일을 멈추고, 쉬고, 놀고, 꿈꾸고, 함께 사색하는 안식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개인주의 문화의 독특한 현상 하나는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이 대부분 개인이나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원래 안식일은 사회적 풍습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규정짓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안식일 전통이다. 공동체로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유대교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전통적으로 안식일은 풍성한 세 끼 식사, 노래, 친구 및 가족과의 친교, 묵상, 그리고 회당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기도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안식일은 수많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축제의 날이며 한 주간의 여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잉글우드에서 공동의 일은 함께 나누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어린이집, 공동체 개발 사업, 회계 사무실과 출판사업, 그리고 그 외의 비영리사업을 운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러 교회처럼 우리도 공동체로서 안식일을 함께 지키는 게 진정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공동체 일원들은 자주 지치곤 한다. 그런 우리에게 안식일에 제일 가까운 것은 위에 소개한 일요일 저녁의 대화 모임일 것이다. 그 대화 모임을 통해 일을 멈추고 함께 사색하고, 서로 더 잘 알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 그렇듯이 많은 멤버에게 이 시간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다. 이를 통해 안식일에 대한 이해도 계속 깊어질 거라고 믿는다.
이 세 가지 원칙을 교회에서 열심히 실행에 옮길 때 우리는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가는 길에 첫걸음을 딛게 된다(마 7:14). 그리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우리를 위해 그려주신 온 인류와 창조물이 어우러지는 축복과 평화의 삶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묵상 에세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놀라운 사건을 묘사한 명화 중의 하나. 바로크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사도들과 마리아의 위에서 구름을 통해 나타난 빛으로 성령 감림을 극적으료 표현하고 힜다. 사도들의 물러선 모습과 표정으로 권능과 놀라움의 감정이 나타난다.
“오순절 성령강림” Jean Restout II (1692–1768) / 루브르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