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0 삶과 믿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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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묵상

우리는 어떤 종, 어떤 일꾼인가?
예수님이 주신 포도밭의 일꾼의 비유를 잘 알고 있다(마태복음20:1-16). 포도밭에 일꾼으로 불려진 이들은 언제 불렸던지 상관 없이 동일한 품삯을 받았다. 일한 시간이 다른데 같은 품삯을? 렘브란트는 불평하며 은혜를 망각한 일꾼의 모습을 밝은 창의 빛에 감싸인 선한 주인의 모습과 대조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선한 포도원 주인이 약속한 대로 지불했음을 잊었다. 더욱이 불러준 것에 감사한 마음은 벌써 날려 버렸다.

우리의 선한 가치나 공으로 우리가 천국을 갈 수 있게 되었던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불려진 종과 일꾼아닌가. 우리의 출발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지막도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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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

지키는 기도
지키는 기도란 일회적일 수 없다. 그것은 지속하는 것이다.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는 사무엘의 표현에 나온다. 기도를 쉬는 것이 왜 하나님께 죄가 되는가.

우선, 기도를 안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다(신 10:14). 백성들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는 일에 사무엘을 부르셨다. 만약 그가 “저는 하나님이 맡기신 이 백성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바빠요.”라고 했다면, 그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세상 모든 민족을 제자 삼을 것을 명령받았다(마 28:19). 여기에 순종하며 맡은 영혼들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쉰다면? 이것은 맡기신 이를 모욕하는 행위다.

두 번째로,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행위이다.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면 죄다. 아담을 보라. 그는 인류 최초로 지키는 업무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창 2:15). 그러나 일 맡기신 분에게 불복종하자 (창 3:24) 이 일로 에덴을 잃고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창 3:17-19).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을 망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다(고전 3:9). 정체성이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을 그리스도의 뜻대로 진행해야 한다. 이 동역의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얻어 사용해야 한다(마 7:7).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동역이 순조롭지 않게 된다. 그분의 일을 그분의 방법대로 할 수 없다. 불필요한 고통으로 인생을 몰고 가는 일의 출발점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로, 기도를 쉬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치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라. 기도가 절실하지만 전혀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기도를 명령하시고 기도자와 함께 일하시기로 하셨다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것인가? 지키려면 힘이 필요하고 그것은 기도를 통해 발현된다.

특히 제자를 삼고 돌보며 키우는 목양의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다(고전 3:6). 이것은 기도로 진행할 때에야 좋은 열매가 맺히는 일이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농부는 씨 뿌리기 전에 밭부터 갈아엎어 놔야 한다. 우리의 영적 농사인 전도와 제자화도 그렇다. 기도는 영적 밭 갈기와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또한 부활하게 하셨다.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기도를 통해 주님과 공조하게 하셨다. 이것을 믿는다면 기도를 안 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기도를 쉬면 그것이 삼중으로 죄가 되니(하나님을 모욕하는 죄, 나를 망치는 죄, 다른 사람들을 망치는 죄) 성도라면 기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먹어봐야 맛을 평가할 수 있듯 기도해야 능력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기도는 액션이다. 기도를 실행해야 기도다. 기도 없이는 기도를 알 수 없고 그 능력도 맛볼 수 없다.  / 송준기 목사 (지키는 기도)

묵상

엠마오로 가는 제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내 옆의 예수님을 느끼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실망에 싸여 뿔뿔이 흩어져 갑니다.
황혼의 햇살을 맞으며 고향으로 가던 글로바와 그 친구의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그들은 사라져버린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젊고 강하고 확고하며 하나님 같았던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믿었던 때를 말입니다. 이제 그 기대는 실망과 비탄, 그리고 후회로 막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고향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자기들과 동행하게 된 낯선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어쩐지 그 낯선이 때문에 그들이 마음은 뜨거워 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은 여행의 목적에 도착합니다.

그 낯선 이와 그냥 헤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 어떤 것에 이끌러 그들은 좀금 더 함께 있고 싶어서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가 식사하실 때의 낯 익은 행동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드실 때 못자국이 나 있는 그 손 때문이었을까. 그 무엇 때문이었던 간에 그들 눈 앞에 드리워져 있던 휘장이 찟어졌으며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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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카드

삶과 신앙

왜 그는 유혹 앞에 무너졌는

고난이 우리에게 몰락을 가져오는가?
우리를 쓰러지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다. 만일 그들이 그것을 예상하고 준비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난은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난을 만나면, 몰락한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이 약한 이유는 기도가 거의 사라지고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미리 앞서가는 기도는 어떠한 유혹에 대해서도 영혼을 준비시켜준다. 다윗이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유혹에 빠진 것은 그가 옥상에 올라갔던 그날이었을까?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중간에 다윗에게 긴 공백 기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다윗이 하지 않은 것 한 가지를 알고 있다. 즉, 그는 그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밖에 나가 별들을 바라보며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러한 일들을 했지만,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다윗은 유혹이 다가오기 전, 그가 허비했던 시간들의 무게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당신이 기도함으로써 유혹을 미리 예측했다면 유혹은 당신을 해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유혹은 틀림없이 당신을 넘어뜨릴 것이다.

예수님을 세번 유혹한 후에, 사탄은 잠시 동안 그분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그 의도는 예수님이 방심하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귀가 한동안 당신을 내버려둔다면 당신은 큰 어려움이 없고 무척 행복하며 상당히 영적인 사람으로 지내면서 이렇게 말하기 쉽다. “그래, 다 잘되고 있어.” 그리고 당신은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며 깨어서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귀는 항상 당신을 노리고 있다.

항상 승리를 거두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루도 사탄이 당신에게 몰래 다가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출근길에 뉴스나 뉴스를 읽는 대신 신약성경을 읽고, 그 다음에 고개 숙여 하나님과 대화하라. 싸울 준비를 하라! 아침에 기도를 건너뛰기보다는 어딘가에서 기도를 부여잡으라. 기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고 몸소 실천하셨다. 그리고 그 때문에 승리하셨다.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고, 기도하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미리 대비하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다. 즉, 정해진 시간에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함으로써 어느 사건이든 대비하신 것이다. 기도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은 의기양양하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도가 언제나 이기기 때문이다. A.W. 토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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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들이 우리의 일부분임을 보여주신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또한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고 들으시며 사랑하시는 분이며 순결하시다. 마음에 악하고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사랑이신 성령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습관적으로 더러운 생각을 품고 음미한다면 습관적으로 성령과의 교감 없이 지내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순결하게 유지하라. 우리의 생각들은 우리가 사는 성전의 내부 장식이다. 우리는 평화를 생각하고, 연민과 자비와 은혜를 생각하고, 자선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깊이 알아가려면 우리의 생각들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 밭이 온갖 부정한 생각이 자라는 황무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말씀을 곁에 두라! 말씀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고, 거듭 묵상하라. 밤에 깨어 있을 때 유익한 구절을 떠올려라.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리고, 하루의 중요한 요소로 만들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나는 한 달 동안 조용히, 경건하게,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해볼 것을 도전한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의 빈 칸 채우기는 제쳐두라. 하찮은 것들을 모두 치우고 성경을 가져와 무릎을 꿇고 믿음으로 이렇게 구하라. “아버지,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소서!”
이제 당신의 신앙 경험에서 방해가 되어 왔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길 권한다. 당신은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이제 당신의 일상생활과 습관들에 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즉 당신이 하는 일들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억압하고 정체시키는가? 이런 것들이 당신의 영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가? 그것들이 세상을 더 매력 있게 만들고 하늘나라를 더 멀어지게 하는가?  / A.W. 토저 『제자도』 중

사순절 – 우리들의 묵상과 기도

하나님, 우리가 맞이한 어려운 때를 하나님께로 더 가가가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테크놀로지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을 넘어서 함께 예배드리니 감사합니다. 이를 통해 예배를 피하거나 잃어 버리지 않게 하시니 이제 더욱 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다른 한편, 정해진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도 되지 않고 쉽교 간편한 테크놀로지의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뉴스를 볼 때마다 나오는 피해의 급증에 불안합니다. 이처럼 날마다 가지게 되는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게 도와 주소서. 항상 굳센 믿음과 성령님의 충만함이 내 삶을 세우게 하셔서 우리의 초점이 세상에 한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지신 고난이 헛되지 않도록 죄에서 멀어지고 매일 매일 순종의 결단과 믿음의 충성을 다해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 박진성 집사

소망의 달, 4월 첫 주일,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COVID-19의 영향으로 우리 일상 생활과 믿음 생활의 균형이 깨지고 있고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와 사역을 위한 헌신과 섬김에 감사합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편 91:4-11)  / 김성배 목사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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