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20 삶과 믿음 모음
신앙과 삶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누구에게든 최선이라고 당당히 얘기할 만큼 정말 열심히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치른 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께 10원 한 장도 받지 않았고, 나눠주면 나눠줬지 누구에게든 부탁이나 아쉬운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살았다.
유학 시절, 물가 비싼 런던에서 IMF까지 터졌을 때 누구에게 한 번도 폐 끼치지 않고 자존심 지키며 살려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정말이지 그때도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 내 열심과 노력으로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내 주변에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러한 인간관계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관계도 다 깨뜨리시고 내 모든 자랑과 의지를 다 꺾으셨다.
하나님께서 치시니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며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내가 지금까지 팠던 웅덩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의지한 막대기가 상한 갈대 지팡이임을 비참할 정도로 보여주실 때가 있다.
“얘야, 너는 나 아니면 안 된단다”라고 가르쳐주시려고 지혜롭고 똑똑하고 가진 것 많고 영향력 있고 풍족한 사람들을 꺾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굉장히 아프고 쓰린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구나’ 하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그 값비싼 과외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개척을 준비할 때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개척지 인근에 있는 성도 몇 명이 함께하겠노라 찾아왔다. 정말 천군만마 같았고 너무 의지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픔과 깊은 상처를 받고, 사람을 의지했던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나님은 목회 시작부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나를 훈련시키셨다.
이렇게 “나는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데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과 영적인 개혁이 시작된다.
그 과외비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면 그 과외비는 절대로 아깝지 않으며 잃어버리거나 손해난 것이 아니다.
– 안호성,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와 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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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역
바리새인이 하지 않았던 기도 –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
기도는 정말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보는데, 나보다 부족한 사람은 무시하고, 거만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주님의 말씀과 반대로 죄와 타협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세상이 변했으니까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모태신앙이고, 교회에서 많은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뒤에서 남들 험담하고, 자기 뜻대로 안해주면 화내고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조종한다면 어떨까요? 겉으로는 전혀 티나지 않게 따뜻하게 웃지만, 속으로 부족한 사람을 비웃고, 분별하고 중보하는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나정도면 그래도 괜찮지.” 라고 말하지만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죄가 내 안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1:15)
덫과 같은 끔찍한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인되어 맘대로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를 드리고 영원히 모실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자녀가 아버지를 닮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었던 바리새인은 혹시 잘못된 것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그렇게 눈이 멀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눅13:34)
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편 139:23,24)
또한 죄를 깨닫고 이렇게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9,10)
우리가 숨쉬는 이 땅에서만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탁월한 의사이신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살피시고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세요.”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 한다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겸손히 주님께 나아갈 때,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죄를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을 구할 때 우리의 눈이 열리고 진정한 자유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다 괜찮다고 핑계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탕자처럼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돌아와 변화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바리새인은 결코 하지 않았던 이 기도. 다윗이 했던 이 기도가 우리 삶에 늘 있어 깨닫지 못했던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길 축복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살피시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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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역
왜 약해지고 흔들리는가?
가만 보면, 성경공부 열심히 하고 말씀을 듣기는 많이 듣는데 영적 삶이 무기력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여기서 걸린 경우가 많다. 말씀을 많이 듣고 받는데 그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 여리고성 무너지는 일은 여호수아 때나 가능한 일이지 그게 요즘 되겠어?’ 이런 식으로 말씀의 김을 빼버리면 안 된다. 이런 식의 불신을 마음속에 품는 순간, 말씀의 역사가 순식간에 멈춰버릴 것이다.
말씀이 능력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실제로 바꾸기 원한다면, 내가 받은 말씀을 하나하나 “아멘!”으로 믿어야 한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어둡고 힘든 때일수록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절박한 심령들이 간절하게 말씀을 듣고 우직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성경말씀이 내 삶에도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에 기적을 만들어 가실 것이다.
“말씀은 너희 모두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가 아니라, “말씀은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라고 했다.
백여 년 전, 한국교회 초창기 부흥운동이 한참 뜨거울 때는 반드시 사경회라는 성경 공부 모임이 있었다. 먼 시골 마을에서부터 다 자기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온종일 말씀 공부하고 중간중간 같이 밥을 나누어 먹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말씀의 축제를 벌이면서 요한복음이나 누가복음 같은 복음서 한 권을 떼었다.
그런 후에는 각자 흩어져 자기 마을로 돌아가서 배운 것을 가지고 1년 가까이 고향 마을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말씀에 대한 그런 열기가 한국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우리 안에 말씀이 들어가야 믿음이 생기고, 말씀이 들어가야 믿음이 굳세어지고, 말씀이 들어가야 믿음이 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과 같아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세상의 잔재들을 사정없이 드러내고 파괴한다. 우리 안에 마귀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은 처음에는 아프지만 결국은 영혼을 치료하고 회복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들어와서 우리 안의 죄와 어둠을 씻어낸다.
말씀이 우리를 살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기가 사람들에게 들어간다. 말씀을 들으면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고, 사랑이 생긴다.
말씀을 들으면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떠나고, 거룩한 비전이 생긴다. 말씀을 들으면 인생 가치관이 달라져서 돈 쓰는 게 달라지고, 사람 대하는 게 달라진다. 말씀이 떨어지는 곳에 죽은 심령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그 위에 우리 신앙의 중심을 세워야 한다.
또한, 운동선수가 경기가 없는 오프 시즌에도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처럼, 영성도 그렇다. 말씀은 듣고 또 들어야 하고, 기도도 쉬지 말고 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영성의 소유자도 잠깐만 기도를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한홍 목사, 『폭풍 속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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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역
폭풍 속의 은혜 –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해서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이 힘든 시간을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모두가 불안하고 답답해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난의 시간이 오래갈 때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치고, 마음이 불안하여 견디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고난에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영적 교훈이 있다. 우리가 만약 이 시간을 세상 사람들처럼 낙담하고 원망하고 보낸다면그것은 고통을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빈의 기독교 5대 강령 중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Absolute Sovereignty of God) 사상이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하고 운영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는 분이시므로 그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도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 안에 있다.
우리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힘들고 놀라운 상황을 현재의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 복음주의 설교가 중 한 분인 존 파이퍼 목사님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하나님이 10억 가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그 일의 99.9퍼센트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하고 계시는 일 중에 하나가 ‘거룩한 멈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인류는 매일 1억 천만 톤이나 되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데, 이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5십만 개가 매일 지구에서 폭발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기는 지구 전체를 끓어오르게 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열기의 90퍼센트 이상이 바다로 흡수되는데, 이로 인해 무서운 슈퍼파워 허리케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날씨 변화가 전 세계 경제에 입히는 손해는 천문학적이다. 지구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홍수와 가뭄, 쓰나미가 일어나고 있고, 호주 산불과 같은 초대형 산불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도 환경 파괴 때문이다.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해수면도 계속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의 비행기들과 배들과 공장들이 멈춰 서면서 자연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스모그로 악명 높던 인도 뉴델리와 중국 대도시 상공도 놀랄 만치 깨끗해졌다. 뉴욕의 대기오염도도 50퍼센트가량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물건을 함부로 쓰고 버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모른 채 질주하는 욕심에 가득 찬 ‘물질문명’이란 기차를 코로나 사태가 잠시만 세워두었을 뿐인데도 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언가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하나님께서는 코로나 사태 같은 재앙을 보면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자각하기 원하시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너무 교만했다. 49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명왕성에도 가고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다. 바이러스 하나에 75억 명이 사는 지구가 멈췄다. 나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여겼던 죽음의 공포가 모두에게 엄습했다.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가인 팀 켈러 목사는 이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은 네가 아닌 내가 다스린다. 넌 나에게 의지해야 한다. 넌 나의 지혜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이 땅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마지막이 가까워올수록 전쟁, 기근, 지진, 전염병 등의 재앙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하시며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것이 평안할 때는 세상의 분주함과 즐거움에 취해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정신없이 살아왔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결코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금 우리의 삶을 예수님 중심으로 재 정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 시간을 영적으로 깊어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평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성경과 경건 서적을 많이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 나의 경우, 산책 시간을 기도 시간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스마트폰 앱으로 설교도 많이 듣는다. 바울은 감옥에서 수많은 옥중서신을 썼고, 《천로역정》도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작품이다. 고난은 깊은 영적 체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영적으로 깊어진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교제가 더욱 친밀해짐을 말한다. 우리 주변의 파도가 거셀수록 우리는 파도를 보고 놀라지 말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분에게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그래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미래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지금 미리 믿음의 눈으로 회복된 미래를 보고, 성령의 능력으로 미리 감사를 선포해보라.
–한홍 목사, 『폭풍 속의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