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21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10/31/2021)

기도한다고 이게 될까?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잡히지 않았다. 자신들의 노하우와 축적된 경험을 다 동원해도, 실패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셔서 “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 말씀하셨다.

자! 삶의 현장, 내 전문분야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신앙과 상관없어 보이고,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라 여겨지는 일상의 삶,

그리고 내가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영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혹시 당신은 이러지는 않겠는가?

“목사님, 제가 이 분야에서는 잔뼈가 굵은 사람이에요.”
“목사님이 잘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나 본데…”
“다 해봤어요. 제 경험으로 봤을 때는요…”
“그건 이론상 안 되고 그럴 확률도 낮아요.”

혹시 설교를 들으며 ‘목사님은 성경 말씀만 하시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 안, 예배 가운데에만 계신 것이 아니다.

당신의 일상과 사적 문제에도 개입하시고, 때로는 ‘내가 이 부분만큼은 최고’라 여기는 전문영역에도 개입하셔서 내 경험과 이성과 지식을 깨고 반대의 일을 명하실 때가 있다.

17년 목회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영역에 개입하셔서 말씀 주시고 명령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떤 분이 노조위원장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신 적이 있다. 죄가 아니며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야겠지만 그에게는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어떤 분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셨고, 어떤 분은 땅 투자에, 어떤 분은 취업에 말씀을 주기도 하셨다. 재정 문제나 자녀교육 문제 등 각자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사적인 영역에 찾아오셔서, 내 이성과 반대되고 충돌되는 명령을 주실 때가 있다. 이렇게 하면 실패할 것 같은 일을 시키기도 하시고, 하면 대박 날 것 같은 일을 막기도 하신다.

그때가 바로 내 믿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내 생각과 경험, 이론을 깨뜨리는 명령 앞에서 내 믿음이 드러나며, 내가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 판명된다. 다시 말하지만,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에 하나님의 감동과 말씀이 개입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실 때는, 내 믿음을 증명하는 때이니, 이때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라.
 –  안호성, 『포커스 온: 집중하라』


멈춰야 비로소 그분이 보입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익숙해서 멈추지 못하면.
그분없이 나 혼자 가는 것이고.
그 결과는 이미 충분히 맛봐서 알고 있죠.

조급함과 두려움.
분주함과 지혜없는 모습.
그렇게 내 부끄러운 모습들.

기도는 일상 속에서 멈춰야만 할 수 있는 그분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그렇게.
삶에 쉼표가 필요합니다.
최세미 작가

>>> 삶과 신앙 (10/24/2021)


이화선 작가 

보통 “기도할게!!”하고 위로하지만,
잊을 때가 많은데요. 제게 큰 도전을 주는 분이 계셨어요.

어느 날, 힘든 일이 생기고, 몸도 아파서 그분에게 조심스레 기도 부탁을 했어요. 그분도 여러 일이 많으신데 죄송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나가다가 간절히 기도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았어요. 조용히 절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어요.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서…

그분은 저 뿐만 아니라, 기도 제목을 받으면 진심으로 기도하세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며,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구하며, 그분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도록 기도하시는데요.

센 사람의 고집을 무조건 받아주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받아서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어요.

그 후로도, 계속 기도해 주심이 너무 감사해서, 감사를 표했더니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주님이 기도하라는 마음 주셔서 기도할 뿐이지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티내지 않고, 영적인 척 하지 않고, 진심으로 기도해주시는 모습이 얼마나 도전이 되는지요.

내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수도 없고, 건강하게 사랑할 수도 없는데, 그분은 주님의 마음을 받으셨구나.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진심으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건강하게 사랑하는 마음. 즉,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답니다.

우리도 이 시간 함께 기도해볼까요?

주님. 제 마음으로는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소서. 진심으로 남을 위해 기도하는 성령을 부으소서.

어려운 상황과 사람에게 눌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충분히 읽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과 인도하심을 구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탕자를 기다리는 강인한 사랑으로, 잘못된 길에서 회개하여 회복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헛된 것들 속에서 실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생수이신 주님을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늘 주님께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따라, 건강하고 지혜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마태복음 7:7)

>>> 삶과 신앙 (10/17/2021)


– 김유림 작가

저는 요즘 <왕의재정 1> 리커버 에디션을 읽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 마음이 쿵 했습니다.

50억의 빚을 지고 망한 저자 (실화)
그러나 그녀는 너무 억울합니다.

‘하나님, 제가 망한 이유를 좀 말씀해주세요. 그동안 물 없어서 고생하는 아프리카에 우물도 몇개 파주고, 교회도 몇개나 지었는데 헌금도 많이 냈는데. 왜 제가 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 말씀으로 검증해야함을 배웠기에, 성경 말씀으로 말씀해달라고 기도하는데, 누가복음 16장을 읽으라는 마음을 주셨답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 눅 16:1,2>

종이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다 써버리자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파면하는 장면.

그녀는 그때 깨닫습니다. 좋은 일을 해왔지만, 자신의 뜻대로 했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칭찬 받는 것을 즐겼던 자신의 동기를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했지만 사실은 내 이름, 내 명성, 내가 칭찬을 받는 곳에 모두 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울며 회개합니다. “당신이 나를 파면했다면 순복합니다, 항복합니다. 이 불의한 종을 용서하시옵소서.”

그리고 회개하며,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나누고 있는데요. 저도 저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혹시 나를 드러내려고 하진 않나요?

기억합시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동기로 한다면? 하나님이 파면 시키시는 순간이 옵니다.

당신의 것이 아니고, 맡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하는데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그냥 있으면 더 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즉각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살린 다윗의 이 기도를 지금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 마음을 살피시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하소서. 회개의 마음을 부으소서. 결코 다시 지뢰밭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를 건져주소서. 주의 마음을 부으소서!”

>>> 삶과 신앙 (10/10/2021)

나는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한 번은 타 교회 성도 가정이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상담을 청했다. 그 가정은 자녀를 어느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내놓고 실망감으로 고민이 깊었다. 특히 아버지는 신앙은 없으나 자녀 때문에 그 대안학교가 속해 있는 교회를 할 수 없이 따라 다녀주는 정도의 초신자였다. 그런 그가 예배 중에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나이 50이 넘은 경상도 사나이가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가 목양실로 들어와 “저는 장사하는 장사꾼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 다니고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보고 말씀에 은혜받고 감동받은 적이 처음입니다”라며 예배와 말씀의 은혜를 고백하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저 같은 장사꾼은 장사하고, 교육자는 제대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목사는 목사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를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왜 학교가 장사를 하고 교회가 장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장사꾼인 저에게는 장사하는 장사치의 술수가 뻔히 보이거든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듣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정신이 번쩍 나는 경험이었다. 나는 ‘나는 과연 지금까지 정말 본질을 붙잡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며 목사답게 살아왔는가?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질문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렇다. 학교는 학교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하고, 교회는 교회답게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이 당연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그 공동체는 존재의 이유를 잃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권위와 힘을 잃는다…

내가 항상 늘 두려워하며 가슴에 새기는 말씀들이 있다. 사역이 분주하고 복잡해지고 여러 가지로 정신없을 때마다 내 마음을 두렵게 하는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의 이 말씀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마 7:21-23

이것이 나와 우리 교회 모습이 될까 두렵다. 주님의 이름으로 참 많은 일을 하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성과도 많이 냈지만, 정작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해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을 당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분주하게 열심히 신앙생활, 종교활동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정말 나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쏟고 있는가, 집중하는가, 그분을 붙들고 있는가,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가, 오늘도 그 보혈의 은혜로, 내가 구원 받았음을 인정하며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사역이 분주하고 선택과 결정의 갈림길에서 생각이 복잡해질 때마다 나는 “장사꾼은 장사하는 게 맞고 교육자는 교육해야 하고 목사는 목회해야 한다.”는 그 분의 말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 복잡했던 고민과 갈등들을 교회의 역할로 집중시켜 단순화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 안호성, 『포커스 온: 집중하라』


이화선 작가

아이가 드러누워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엄마아아아~~ 사줘 사줘 사줘!!!”

아이는 갑자기 기도하는 듯 엎드리더니

“엄마! 내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당장 장난감 사주래!”라고 했어요. 엄마는 웃음이 나왔지만 다시 말했대요. “정말 하나님이 맞으실까?”

그런데 우리도 이러지 않나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에만 치중하고, 그분의 공의나 회개하심에 대해서는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시는 하나님. 혹시 내가 만든 하나님이 아닐까요? 그건, 우상이기에 나를 망가뜨리지요.

진정한 사랑은 “네가 뭘하든 다 괜찮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다 괜찮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죄에 빠진 것은 결코 괜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고,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잘못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 한번도. 그 모습 그대로 괜찮아. 네가 뭘 하든 다 사랑해.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더 좋은 계획이 있기에, 탕자의 삶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 괜찮다가 아니라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이제, 내가 만든 하나님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을 통해 회복되게 하소서. 회개의 영을 부으소서!
성경을 통해, 주님을 진짜 만나게 하소서!

 – 이화선 작가

>>> 삶과 신앙 (10/3/2021)

마음과 시선을 제대로 집중해야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 고전 9:26

마라톤 선수가 방향 없이 뛰면 어떻게 될까?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은 대단하지만, 결승선을 향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빨리 달려도 헛수고가 된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듯 평생을 믿음 생활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여 상 받고 칭찬받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를 제대로 알고 집중하는 게 아니라 향방 없이 달린다면 오히려 열심히 달린 만큼 거꾸로 다시 돌아와야 할 후회거리가 될 수 있다.

설렁설렁 사는 것 같은데도 능력 있고 열매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마치 사자와 같다. 사자가 평소에는 백수도 그런 상백수가 없다. 파리가 달라붙어도 눈도 뜨지 않고 귀찮은 표정으로 늘어져 있고.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사자다. 그런데 일단 목표물이 정해지면 달라진다. 수사자의 몸무게가 약 160-200킬로그램 정도 되는데 이 어마어마한 수사자가 갈기를 휘날리며 시속 60-80킬로미터로 달린다.

토끼나 쥐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뭔가 바쁘다. 나는 지금까지 토끼나 쥐가 한가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반면 사자는 늘어져 있다가도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물만 쫓아가 잡는다. 승리하고 열매 맺는 인생, 존귀한 인생은 그런 집중의 능력에서 나온다.

우리 교회 심수용 집사님은 키도 체격도 그리 크지 않지만 권투 동양 챔피언을 지냈다. 그 분이 해준 얘기인데, 펀치를 몇 번 휘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승리의 요건은 정확한 타이밍 한 번에 집중하고 목표점을 정확하게 때리는 그 한 방에 있다고 한다.

축구도 그렇다. 한번은 우리 교인들과 다섯 쿼터를 쉬지 않고 뛰었는데 그 전날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집중이 안 됐다. 아무리 공을 차도 골대를 비껴가고 페널티킥도 안 들어갔다. 그날 뛰기는 엄청 열심히 뛰어서 나로서는 역대 최대인 2만 보를 뛰었지만 많이 뛰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골대에 집중해서 한 방만 제대로 차 넣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 몸만 힘들고 지칠 뿐이었다.

“나 열심히 뛰었어”가 자랑이 아니다. 해결해야 할 때 해결하는 것이 능력이고, 넣어야 할 때 넣어야 승리한다. 이기기를 원한다면 허공을 치지 말고 향방 없이 뛰지 말고 목표를 정확히 잡고 방향성 있게 집중해야 한다.

성도들이 목사에게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하소연하는 것이다. 열심히 뛰는 것과 바쁜 것을 자랑하지 말고 내가 제대로 바쁜 건지, 제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교회 열심히 다니며 분주하게 신앙생활 한다고 다 하나님의 기쁨이요 충성됨인 것은 아니다. 집중 없는 분주함은 오히려 하나님께도 자신에게도 고통이 될 수 있다.

오늘 내가 얼마나 바쁜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를 자랑하지 말라. 오직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내게 원하시는 일을 정확하게 해내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하며 이 집중의 능력을 키워가라. 그것이 믿음의 성장이다.

– 김남국 『준비하고 있으라』


사랑하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환경이 뒤집혀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도, 죽도록 아파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믿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면 기다림도 힘이 들어집니다.

조금만 환경이 뒤집혀도
조금만 가능성이 낮아져도
조금만 억울하고 조금만 아파도
소망은 금방 흔들립니다.

내가 그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분과의 약속이 지체됨에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꾸 다른 방법을 기웃거리고 있다면…

내가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다시 점검하십시오.
기다림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박성민 작가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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