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1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12/26/2021)
만고불변의 진리, 믿음의 법칙
믿음의 법칙(수확의 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만든 마음의 법칙입니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믿음의 법칙은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심어야 거둘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아무리 기대하고 소망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표면의식으로 생각한 것은 경험된(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마음 깊숙이(주로 잠재의식 내) 심기지(기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간절히 원함으로써 마침내 그것이 이루어진(경험되어진) 것으로 믿게 된다는 것이며, 잠재의식 내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오늘날 과학자들이 발견한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은 “뇌와 잠재의식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는 “우리가 믿은 대로 현실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현실을 경험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정말 이루어질 것으로 믿을 때 그 믿은 대로의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믿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동안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 8:13)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마 8:13)
둘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칙입니다. 콩을 심고 팥을 수확할 수는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둘 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생각(기대, 소망)하는 것과 자기가 심은 것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빨간 사과를 생각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지금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그려질까요? 당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빨간 사과를 그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암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 암을 치유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면 당신의 생각과는 달리 당신의 마음에 그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 암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대하고 소망한 대로가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선한 것을 심고, 선한 결과만을 기대하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심은 악한 것도 동일하게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든지 또는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축복 아니면 저주 가운데 있고 우리에게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계속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취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믿음을 갖고자 하는 것보다 믿어지지 않는 것(의심이나 불신)이 훨씬 더 큰 믿음으로 작동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하루에 콩을 세 시간 심었는데 한순간 ‘설마 콩이 나겠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면, 세 시간 심은 콩의 수확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 심은 것에 대한 증수(增收)의 법칙입니다. 생명은 번식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 알의 씨를 심으면 하나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풍성히 거두게 됩니다. 식물의 씨를 심고 그 열매의 수확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좋은 것은 하나를 심었는데 나쁜 것은 두 개를 심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결국에는 나쁜 것만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어떤 기도를 했느냐보다 기도하지 않은 나머지 시간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기도하지 않는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8)
우리는 늘 우리의 부족과 결핍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가 내면의 의심과 불신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를 찾아내어 기록하고 감사할 때 우리는 점점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심은 감사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수확되기 때문입니다.
– 손기철, (말씀대로 말하라)
>>> 삶과 신앙 (12/19/2021)
성탄을 기다리며
매일 크리스마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절의 기쁨과 감격이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매해 반복 되는 기념일로 지나가지는 않았나요?
12월 25일. 단 하루만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억하는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삶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매일 크리스마스!”
매일의 시간에서 주님께 감사와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의 삶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간이 되심으로써 감수하신 큰 위험을 생각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맡기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나눔으로써 감수하신 큰 위험을 생각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우리를 악의 힘에서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친히 학대와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감수하신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생각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오, 평화의 하나님, 하나님은 크리스마스 기간마다 우리 마음에 소망이 가득하게 해주십니다.
이 세상이 주께서 사랑하신 세상임을 다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과 평안과 기쁨이 이 밤에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하소서
>>> 삶과 신앙 (12/12/2021)
삶으로 말해야 진짜다!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내 몫으로 남겨진 건 진실함으로 내 중심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당부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전 4:16
그리고 20절에 다시 말한다.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고전 4:20
바울의 권면은 ‘내 말을 믿으라’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자기처럼 살라는 강한 권면과 명령의 표현을 썼다. 이것은 ‘나를 흉내 내서 살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삶으로 말해야 진짜다.
결국 말하는 습관과 표정, 행동에서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내 인상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하나님의 꿈으로 살고, 예수님의 성품을 내 인격으로 삼고,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마음껏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내면’, 이것들만 천국에 가져갈 수 있다.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과 같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요일 2:6
그리 오래전이 아닌 1년 전쯤 발견한, 내 삶에 큰 울림과 지침이 된 구절이다. 예수님처럼 사는 게 마땅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여전히 부딪히고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매일 조금씩 더 그분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 김태훈, 『깨어진 그릇』
대강절(Advent)
11월 28일부터 24일까지 대림절(강림절, 대강절)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에스겔서를 읽고 있으면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 세상의 포로생활에 놓여 고통과 암흑 속에 있던 우리를 하루속히 구원하시길 바라시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대강절3주째입니다. 어두웠던 우리 마음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그리고 설렘과 기다림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진정 구원받은 자인지, 혹시 버림받은 자는 아닌지를 ‘마음에 임하신 주님’을 정말 믿고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