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2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2/27/2022)
기도 한 이유?
특별하거나 대단한 기도꾼이어서가 아니었다.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였다.
건강검진 결과, 의사가 다이어트 안 하면 죽는다고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신체 나이 그래프를 보여주는데 나도 놀랍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헬스클럽에 등록한다.
일 년 치 회비를 내고 당장 운동을 시작한다. 그날 밤 허리가 아프다. 무릎도 삐걱거리는 느낌이고 팔, 다리, 목, 관절들이 다 뻐근하다. 파스를 찾아 뒤척거리다가 좀 늦게 잠들었는데, 눈떠보니 또 8시다!
내 얘기는 아니지만 남 얘기 같지도 않은 다이어트 실패담이다.
기도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은 다이어트와 닮았다. 다이어트만큼이나 기도 역시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도는 습관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습관화하려고 기도 책도 사서 읽는다.
특별새벽기도 같은 기회가 있으면 꼭 참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루 이틀 정도 기도하다가 눈떠보면 또 아침 8시다.
얼마 전 “헬스클럽이 돈 버는 진짜 이유”라는 글을 읽으며 낄낄댔다. 특히 공감한 부분은 ‘동기의 부재’였다. 다이어트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건강해야만 하는 이유가 별로 찐하지 않아서다. 운동을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라면 동기 부족이다.
단적 예로,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당신이 뚱뚱해서 싫다”라고 하며 헤어지자고 했다든지, 지난 10년간 실패하던 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올랐는데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든지, 한 달 안에 정해진 몸무게를 빼면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될 수 있다든지 이런 동기가 필요하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를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가끔은 기도할 수 있지만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 반복과 지속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이 찐한 동기가 없어서다. 진짜 기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어서다.
나의 기도 스승인 어머니는 홀로 남매를 키우며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못 배우고 가난한 여자가 혼자서 가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오늘날도 힘들지만 1970년대는 더했다.
그녀는 아침에는 파출부였고, 낮에는 식당 배달원, 밤에는 화장실 청소부였다. 그러면서 살림도 했다.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도 채 안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월세 한 번 제때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도했다. 아니, ‘그래서’ 기도했다. 말문이 터지기 전부터 봐왔다. 어머니가 원래 특별하거나 대단한 기도꾼이어서가 아니었다.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였다. 죽을 것 같은 생활고와 살려야 하는 자식들 때문이었다. 기도해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기도했다. 그녀는 동기가 확실했다.
어머니의 삶은 죽음이 내리쬐는 사막 같았다. 혼자라면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생명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있어서 살아야만 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생명도 내줄 사랑이 있었다. 거기서 ‘지키는 기도’의 샘이 터졌다. 덕분에 자녀들은 영적 오아시스에 풍덩 잠겨 안전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도로 지키셨다(요 17:1-26). 그분은 제자들을 기도로 뽑으셨고, 기도로 이끄셨으며, 기도로 보내셨다(막 6:32-46, 눅 6:12,13, 요 17:18). 사랑 때문이다.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기도로 지키셨다(요 17:26). 그리고 지금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계신다(롬 8:26,27). 그러기에 지키는 기도의 원류는 예수님이시다.
기도 이벤트는 쉽다. 그러나 기도 습관화는 어렵다. 그러려면 반복해야 한다. 한두 번 빼먹는 기도는 습관 만들기의 적이다. 지속성이 습관화에 비례한다.
여기서 동기가 작용한다. 미적지근한 동기는 ‘퐁당퐁당 기도’(빼먹는 기도)를 만든다. 지속하려면 동기가 확실하고 뜨거워야 한다.
예수님의 지키는 기도로 제자들이 바뀌었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었다(행 24:5). 내 어머니는 지키는 기도로 자신의 환경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가끔 하는 기도나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적당히 기도해도 되는 적당한 수준의 신앙생활이란 없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건 그분과 같은 언행을 요구한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처럼 사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정상’ 범주에 넣기 힘들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진”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후 6:6,7).
크리스천은 평균 범주에 들지 않는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정의된다(고후 6:8-10).
세상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크리스천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상’ 영역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다른 이름은 ‘이름뿐인 크리스천’, 혹은 ‘기도하지 않는 크리스천’이다.
당위성과 열정이 있을지는 몰라도 기도가 습관이 되기까지 반복할 수준의 동기가 부족하다. 그런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하고 뜨거운 인식이다.
‘기도가 아니면 절대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매번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충 기도생활을 하다가는 영성도 인생도 대충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름뿐인 신앙인의 대열에 들어가 그럭저럭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기도가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알면 당신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 송준기, 『지키는 기도』 –
>>> 삶과 신앙 (2/20/2022)
불면증을 이기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요즘에 생각이 많아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깊이 잠이 들게 해 주시 옵소서.
꼭 잠을 자야한다는 압박감을 내려 놓습니다.
빨리 잠들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내려 놓습니다.
잠을 못자서 내일 하루를 망치면 어떻께 하나 하는
염려까지도 다 내려 놓겠습니다.
성령님, 이 시간 저의 머리에 안수해 주시옵소서.
부드러운 손길로 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고
긴장하고 있는 제 어깨를 토닥여 주시고
떨리는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저를
창조주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시니
이것이 웬 은혜입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저를 용서해 주시고,
아무런 조건도 묻지 않으시고 저를 구원해 주시니
주님, 고맙습니다.
제가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저를 사랑해 주시고,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저와 함께 하시며
제 삶을 인도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운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예, 주님! 내일에 대한 모든 염려를 내려 놓습니다.
모든 스트레스를 내려 놓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지친 마음에 쉼과 안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나는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저를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정죄하지 않겠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예민해진 제 마음을
둔감해지게 해 주시옵소서.
주변의 소리들을 무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짜증나게 하는 것들로부터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지게 해 주시옵소서.
모든 불면증을 치료해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예민해진 마음도 내려놓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운 마음도 다 내려놓습니다.
주님, 이 시간 제 마음에 오셔서 다스려 주시옵소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안식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긴장이 풀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잠을 자는 동안 면역력이 올라가고 호르몬이 균형을 찾고
정서적인 안정을 얻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깊은 숙면을 취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잠 3:24)
– 장재기, (따라하는 기도) –
>>> 삶과 신앙 (2/13/2022)
지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
제 아내는 요리를 잘해서, 제가 좋아하는 해산물 스파게티를 맛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려면 면도 필요하고 새우도 필요합니다.
달콤한 설탕도 필요하고
소금과 간장,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설탕이 달고 맛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요리가 되지 않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하려면 짠 소금도 필요합니다.
한 꼬집의 소금만 빠져도 맛이 없어집니다. 모든 재료가 조화를 이룰 때,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설탕같이 달콤한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소금처럼 짜고 고춧가루처럼 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매운 고춧가루 한 스푼으로 인생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짜디짠 소금 같은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달고 짜고 매운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완성되었다고 하실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지금은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때가 되면 상상하지 못했던
기막힌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압니다.
그분은 기도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기 원하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의 여정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기도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몇 번을 기도해야 하나요?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하는 것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는 빨리 응답되기도 하고 어떤 기도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철저한 유교였던 저희 가정이 모든 제사를 폐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정이 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언제 응답될지, 몇 번을 기도해야 응답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 씨앗을 심고 오늘 싹이 보이지 않는다고 씨앗을 파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엘리야도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했고(왕상 18:43,44), 예수님도 오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한 기도는 모두 응답될 것입니다.
– 장재기,『따라하는 기도』 –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죠?”
어떤 사람이 자기는 기도를 하면 금방 끝이 난다며 물었다.
“그런 게 있겠어요. 음, 뭐 그냥 있는대로 이야기 하자면…
하나님과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요.
그분은 나의 아주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지 결국 그 이야기들이 끝날 때쯤 우린 서로 아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헤어지기 싫어서요.
눈을 뜬다고 하나님이 제 옆에서 멀어진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눈을 뜨면 아무래도 다른 것에도 집중을 해야 하니까요. 둘 만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죠.
마치 연인들이 데이트를 마치고 집 앞에서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그렇게 우린 함께 있는 게 좋아요.”
항상 내 할 만만 하고 돌아섰던 난 참 쌀쌀맞은 연인이었겠구나…결국은 또 사랑이다.
– 박성민 작가 –
>>> 삶과 신앙 (2/6/2022)
기도는…하나님께 내가 설득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불안해지며 염려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뜻대로 응답 안 해주시고, 하나님 뜻대로 해주실까봐 그렇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주의 뜻이 내 뜻과 맞아야 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이미 해주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응답을 못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주님의 응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이다.
그러나 내 뜻과 달라도 응답은 응답이다.
그리고 그 응답이 나중에 보면 우리의 뜻보다 낫다. 훨씬 낫다.
그래서 성령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이 있다 해도 빨리 접는다. 포기가 빨라야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진다. 내 뜻과 다르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 순응하면 기도생활이 평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결국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가 설득당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지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요, 마귀를 이기는 길이다.
기도가 잘 안 된다고, 기도가 힘들다고 낙심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힘을 내라.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서로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기도를 힘들어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기쁘고, 즐겁고, 항상 틈만 나면 한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그렇게 풀어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된다.
그럴 때 기도가 뚫리고 기도에 자유함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자. “기도의 영, 성령을 우리에게 뜨겁게 부어주옵소서!”
한홍 목사, 『하나님과 함께 걸어 가는 길』
마귀의 전략:
“제발 기도하지마! 낙심해라!”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온갖 방해를 하다가, 낙심의 생각을 넣어줍니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뭐가 될까? 상황을 봐봐. 내가 이렇게 노력해도 겨우 이만큼이야. 이미 나는 글렀어.’
그래서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온 생각만 받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며. 예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생각들은 예수이름으로 끊어질지어다.”라고 기도하십시오.
응답이 없고,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은밀히 보시는 주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낙심을 주는 마귀의 전략을 예수이름으로 끊어버리고, 다시 일어서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는 우리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