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4 삶과 믿음 모음

>>> 삶과 신앙 (5월 26일 2024)

오순절은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모두에게 임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성령님의 능력을 받았고, 전혀 배우지 않은 다른 언어로 복음을 전합니다. 또 베드로는 성령님으로 충만해 복음을 전하고, 수 천명이 회개합니다. 성령님이 불꽃처럼 또 바람처럼 내린 이날, 비로소 신약 교회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심각하게 생각하여 볼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120여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과연 이 숫자는 충분한 숫자일까요?

개역개정은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어 성경에는 “약 120여명 정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120명이란 숫자가 작은 것인지 큰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또 부활의 첫 열매로 초실절(안식일 다음 날) 즉 주일 새벽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약 600여 명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고전 15:4-8).

1) 열두 제자  2) 오백 형제  3) 야고보(예수님 동생)  4) 모든 사도(70문도)  5) 바울

예수님은 5-600명을 만나신 후, 40일째 되는 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과 함께,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며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순절 때 모인 무리의 수가 120여 명이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어디로?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본 사람들 중 480여 명은 유월절과 무교절 이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이들은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기다리라”는 명령을 잊어버리고 (혹은 무시하고) 다시 삶으로 가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는 요엘 2장 28-32절 예언이 실현되는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 삶과 신앙 (5월 19일 2024)

성령강림 주일
그 결과 이들은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는 요엘 2장 28-32절 예언이 실현되는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들에겐 잠시 혹했던 부활 이야기, 영생 이야기, 천국 이야기가 그렇게 큰 매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천국 혼인잔치에 초대받았으니 자기 일을 하러 가지 않았던 이들처럼(마 22:1-14) 이들은 천국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그러나 택함을 입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체도 보지 못하고 그의 구세주 되심을 믿고 있습니다. 2천 년 전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의 객관적 신앙 조건은 분명 이들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만 보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심’과 또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습관처럼 입술의 고백은 할 수 있을지언정,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았던 열두 사도처럼 실천하는 신앙을 갖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요즘 주변 신앙인들을 보면 입술의 고백이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하는 우리들은 지금부터라도 부활이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성경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것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한 사도들에 의한 증언이 기록된 성경이 있다는 점입니다. 즉 기독교 신앙의 기초에는 사도들의 증언이 핵심을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480여 명은 예수님의 부활체를 만나보고도 믿는 특권을 포기하였지만, 우리는 성경 기록만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성경을 읽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 3년을 보내고 또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한결같은 증거에 힘입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과 또 미래를 향한 약속에 대하여 먼저 자신이 잘 알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증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 3:15).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한 가지 즐거운 소식은,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점입니다 (요 14:2). 그래서 천국은 잔치에 자주 비유됩니다.

여러분 모두 120문도처럼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준비해 놓으신 천국 잔치를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순절은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120문도가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각인의 머리에 임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후 여기에 모였던 사람들은 능력을 받아 전혀 배우지 않았던 각종 언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설교를 할 때 한 번에 수천명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성령이 불꽃처럼 또 바람처럼 내린 이날, 비로소 교회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한 가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여 볼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120여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돼 있지만, 과연 이 숫자는 충분한 숫자일까요?

개역개정은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어 성경에는 “약 120여명 정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120명이라는 숫자가 작은 것인지 큰 것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또 부활의 첫 열매로 초실절(안식일 다음 날) 즉 주일 새벽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바울의 증거에 따르면, 약 60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고전 15:4-8).
1)열두 제자 2)오백 형제 3)야고보(예수님 동생) 4)모든 사도(70문도) 5)바울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신 후 40일째 되는 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말씀과 함께,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며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순절 때 모인 무리의 수가 120여 명밖에 안 됐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어디로?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본 이들 480여 명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불과 10일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 “기다리라”는 명령을 잊어버리고 (혹은 무시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간 것입니다.

>>> 삶과 신앙 (5월 12일 2024)

성령 강림절 (Pentecost) 은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인 일요일에 성령이 오심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주요 절기이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예수님게서 승천하신 것과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왔던 날을 기념한다.

성령강림절은 크리스천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날 성령님의 역사로 다양한 언어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서는 ‘방언’이라고 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제자들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크리스천들이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를 받기 시작한 날로 여겨지고 있다.

성령강림절은 유대교의 ‘칠칠절’과 같은 날이다. 칠칠절은 유월절 후 밀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지냈던 감사 절기이다. 구약성경에 ‘칠칠절’이라고 기록됐던 이 날이 신약성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표현돼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던 중 오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 충만함을 입게 되어,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성령강림절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성령님의 역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날이다.
성령님께서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시고, 신앙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것처럼 우리도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뜨럽게 기도해야 한다.


>>> 삶과 신앙 (5월 5일 2024)

오순절 (Pentecost)란?
오순절, “칵 학카칠”은 “벤다 획득하다 수확하다’”에서 파생된 명사(학카칠)로 “열매를 거둠, 추수함”을 뜻한다. 노동과 그 결실에 대한 감사절기다. 성회로 모여 5가지 제사(소제, 번제, 속죄제, 화목제와 요제)를 드렸다. 하나님과 교제하고v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하나님이 내려주신 축복에 감사하는 날이다 (레23:21).
오순절로 개명 되어 신약성경에 사용된다 (행 2:1, 20:16; 고전 16:8).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전해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시기로, 봄철 첫 곡식을 거두는 때, 신령한 첫 열매를 천국에 모으는 때다. 성령강림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되어, 이후 교회들의 모형이 되었다. 기도에 힘썼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함께 모여 말씀과 기도, 순종과 헌신의 삶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고, 성령님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로 영적 재무장을 갖추며. 구원 받을 성도를 교회로 모으는 시기이다.

구약성경에 “영(성령)”이란 표현이 약 380회 나온다. 보통 “호흡” “바람”이란 단어로 능력을 뜻한다. 때로는 아주 강력한 현상을 동반한다. 신비로운 현상으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나타났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주시며 또한 거두어 가신다. 성령님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꾸준히 알려오셨고, 생명의 원동력이며 창조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에게 다양한 능력, 장로들의 경우 예언과 지도력, 사사들의 경우 용맹과 이스라엘의 구원, 삼손의 경우 힘을 부여하셨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도록 사람들을 이끄셨다.

영과 육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성령님은 이방인 같지만, 성령님을 떠나 존재하지 못한다. 때로는 성령님의 사역을 감동을 받은 사람의 사역이, 쉽게 구별되지 않을 만큼 아주 밀접한 긴밀했다. 선지자들은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개인적으로 또한 계시(예언)를 통해 뚜렷이 경험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온전함을 경험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의로움을 삶에서 실현하도록 인도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깨닫고 경배하게 인도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을 강력하게 또한 온전하게 변화시키신다. 성령님과의 긴밀하게 교제할수록 더욱 진취적인 삶이 되었다. 선지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임재가 선포되었고, 새 마음, 새영과 새 언약이 약속되었다.

성령 하나님이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전례 없던 특별한 역사를 행하셨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고, 주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다. 그들의 담대함과 지혜에 공회와 유대인은 크게 놀랐다.

사도행전을 성령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과 안디옥의 교회는 성령님으로 충만한 신앙 공동체였다. 성령님이 모든 사역과 성도를 인도하셨다. 교회의 지도자들 모두는 성령님으로 충만했다. 성령님은 성도에게 능력과 담대함을 공급하셨다. 성령께 순종하는 만큼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 있었다. 성령님과 동행할 때 복음을 전하며,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교회는 성장했다. 성령님이 능력을 교회와 성도에게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만큼 세상의 소금과 빛 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누리며, 나눌 수 있다.

<삶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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